등대 값은 누가 내나 — 교과서가 세 번 뒤집힌 이야기
1834년 잉글랜드에서 통행료를 걷는 데 든 비용은 등대 유지비 총액의 3분의 1이 넘었다
등대는 오랫동안 순수 공공재의 표준 사례였다. 불빛을 막을 수 없으니 아무도 값을 내지 않고, 그러니 국가가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1974년 로널드 코스가 영국 기록을 뒤져 사설 등대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반박했고, 그 반박은 다시 반박됐다. 세 번의 뒤집기 끝에 남는 것은 물건의 성질이 아니라 제도라는 결론이다.
1710년대, 웨일스 앵글시 섬 북쪽의 바위섬 스케리스에 석탄불이 올랐다. 불을 올린 사람은 윌리엄 트렌치라는 민간인이었다. 그는 앤 여왕에게서 특허장을 받았다. 등대를 세우는 대가로, 그 앞을 지나는 배에서 요금을 걷을 권리였다. 배 한 척당 1페니, 화물 1톤당 2펜스. 문제는 배들이 그냥 지나갔다는 것이다. 불빛은 바다 위에 이미 깔려 있었고, 항구에 닿은 선장이 굳이 돈을 낼 이유는 없었다. 트렌치는 아들을 그 바위에서 잃었고, 빚을 진 채로 죽었다. 그런데 같은 바위섬이 한 세기 뒤 44만 파운드가 넘는 값에 팔린다. 영국이 사들인 등대 중 가장 비싼 값이었다. 등대는 그대로였고 배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하나, 돈을 걷는 방식이었다.
교과서는 등대에서 출발했다
경제학 입문서를 펼치면 공공재 항목에 등대가 나온다. 두 가지 성질 때문이다. 한 배가 불빛을 본다고 다른 배가 볼 몫이 줄지 않고, 값을 안 낸 배라고 해서 불빛을 가릴 방법이 없다. 뒤쪽 성질을 배제 불가능성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돈을 안 낸 사람을 쫓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쫓아낼 수 없으면 아무도 자진해서 내지 않고, 아무도 짓지 않는다. 그러니 국가가 지어야 한다.

이 논리는 150년 넘게 이어졌다. 코스가 자기 논문에 인용해둔 밀의 문장을 보자.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밀은 등대를 짓고 유지하는 일이 정부의 온당한 직무라고 했다. 국가가 강제로 걷어 보상해주지 않는 한 누구도 사익을 좇아 등대를 짓지는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헨리 시지윅은 1883년에, 잘 놓인 등대의 혜택은 통행료를 물릴 수 없는 배들이 대부분 누린다고 적었다. 폴 새뮤얼슨의 교과서는 아예 못을 박는다. 역시 코스가 옮겨 적은 대목이다.
사업가는 이것을 지어 이윤을 낼 수 없다. 이용자 각자에게서 값을 받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자연스럽게 떠맡을 종류의 활동이다.
코스가 이 문장들을 나란히 모은 이유는 하나였다. 반박하려고.
코스가 문서고에서 꺼낸 것
「경제학에서의 등대」는 1974년 『법과 경제 저널』에 실렸다. 코스는 영국 기록을 뒤졌다. 교과서가 사례로 든 바로 그 나라에서 등대가 실제로 어떻게 지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1820년 영국에 있던 등대 46기 가운데 24기는 해운 단체인 트리니티 하우스가, 22기는 민간이 운영하고 있었다. 애초에 세운 주체로 따지면 46기 중 34기가 민간이었다. 1610년부터 1675년까지 65년 동안 트리니티 하우스가 새로 지은 등대는 한 기도 없었다. 민간 사업자가 짓고, 특허장에 적힌 요율대로 통행료를 걷고, 그 권리를 상속하고 팔았다.

트리니티 하우스가 등대를 안 지은 이유도 기록에 남아 있다. 이 단체의 주 수입원은 등대가 아니라 도선과 밸러스트 공급이었고, 그 돈은 늙은 선원들에게 주는 연금으로 나갔다. 등대는 짓기도 굴리기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민간에 지어 굴리게 하고 임대료를 받는 편을 택했다. 임차인 중에는 트리니티 하우스 자기 회원들도 있었다.
숫자 자체는 자료마다 갈린다. 무엇을 등대로 치느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항만이 소유한 등대와 바다에 띄운 등선까지 넣으면 총계는 훌쩍 뛴다. 다만 어느 집계를 쓰든 민간이 운영한 등대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19세기에 이 등대들이 정리될 때 오간 돈도 코스는 적어두었다. 스몰스 17만 파운드, 타인머스 12만 5천 파운드, 스펀 33만 파운드, 스케리스 44만 5천 파운드. 스케리스의 액수와 시점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트리니티 하우스 자신의 기록은 1841년에 444,984파운드라고 적고 있고, 다른 자료는 1836년 법에 따라 44만 파운드를 조금 넘겼다고 쓴다. 어느 쪽이든 등대 한 기 값으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코스의 마무리는 단호했다. 경제학자들은 등대를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사례로 드는 습관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요금은 누가 걷었나
여기서 끝났다면 깔끔했을 것이다. 끝나지 않았다.
데이비드 반 잔트는 1993년 『법학연구 저널』에, 엘로디 베르트랑은 2006년 『케임브리지 경제학 저널』에 반론을 실었다. 핵심은 요금이었다. 민간 등대주가 받은 특허장은 사업 허가가 아니라 징수권이었다. 요율은 협상이 아니라 국왕이 정했고, 해군 함정은 면제였다. 돈은 항구에서 걷혔는데, 걷는 사람은 트리니티 하우스 직원과 세관 관리였다. 트리니티 하우스 소유든 민간 소유든 징수 경로는 똑같았다. 베르트랑의 지적은 더 직접적이다. 등대 '소유주'에게는 국왕의 허가 없이 요금 납부를 강제할 권리 자체가 없었다.
그러면 이건 시장 해법인가. 배는 불빛을 봤든 못 봤든 입항하면 냈다. 안 내면 세관이 붙들었다. 이용에 대한 값이 아니라 항구에 들어온 대가로 매겨진 부과금이다. 코스가 증명한 것은 배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지만, 배제한 주체는 등대주가 아니라 세관이었다. 트렌치가 망한 이유와 그의 후계자들이 부자가 된 이유가 여기서 갈린다. 트렌치에게는 강제할 힘이 없었고, 후계자들에게는 의회가 영구히 확인해준 징수권이 있었다.

물론 이 반론에도 반론이 붙었다. 윌리엄 바넷과 월터 블록은 2007년과 2009년에 코스 편에서 재반박을 내놓았고, 논쟁은 지금도 닫히지 않았다. 로솔리노 칸델라와 뱅상 젤로소는 2019년에 아예 방향을 틀어, 거래비용이 높게 유지된 것이 국가가 개입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국가가 개입한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 논쟁의 진짜 쟁점이다. 어디까지가 시장이고 어디부터가 국가인지, 우리는 사실 합의된 선을 갖고 있지 않다.
1731년, 진짜 실험이 한 번 있었다
자발적 자금조달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731년 데이비드 에이버리와 로버트 햄블린은 템스강 어귀 노어 모래톱에 등선을 띄웠다. 19톤짜리 실험선으로 시작해 100톤 배로 키웠다. 돈은 사전 청약과 런던 거래소·커피하우스에서 모은 자발적 기부로 댔다. 요율은 톤당 0.045~0.12펜스로 기존 등대의 절반이 못 됐고, 손님에 따라 값을 달리 받았다. 강제 징수 없이도 돈이 모인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결말은 특허 독점 쪽의 승리였다. 트리니티 하우스가 소송을 걸었고, 1732년 5월 국왕은 이들의 특허를 취소했다. 1733년 11월 에이버리는 항복하고 연 100파운드짜리 61년 임차 계약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독점을 얻었고, 요율은 톤당 0.15~0.24펜스로 올랐다. 외국 배는 그 두 배였다. 무임승차가 이 실험을 죽인 것이 아니다. 특허를 쥔 조직이 죽였다.

배제할 방법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도선이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낯선 바다로 배를 안내하는 일인데, 이건 돈을 안 내면 그냥 안 해주면 그만이다. 등대와 도선은 같은 목적에 쓰이는 짝이니, 도선료에 등댓불 값을 얹어 받는 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실제로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에서는 도선사가 등대를 함께 운영했다. 영국에서는 그 길이 막혀 있었다. 1604년부터 템스강 도선은 의무였고 면허권은 트리니티 하우스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숫자를 다시 세면 방향이 뒤집힌다
최근 연구는 논쟁을 아예 다른 자리로 옮겨놓았다. 댄 보가트 연구진이 1834년 의회 특별위원회 자료를 재구성해 2022년에 내놓은 계산에 따르면, 1831년 잉글랜드의 등대는 트리니티 하우스 39기, 민간 13기, 항만 당국 38기였다. 코스의 이분법이 가린 세 번째 범주가 여기 있다. 항만 당국 등대는 의회가 승인한 항만세로 굴러갔고, 평균 유지비가 가장 쌌다. 민간 등대의 평균 통행료는 톤당 0.714펜스로 트리니티 하우스의 0.398펜스보다 높았다. 징수 비용은 등대당 평균 731파운드 대 182파운드였다. 민간이 더 싸지도, 더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숫자는 따로 있다. 1834년 위원회 집계로 잉글랜드 항구들의 통행료 징수 비용은 연 16,914파운드였다. 등대 유지비 총액 45,013파운드의 3분의 1이 넘는다. 불을 켜는 값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는 값이다. 배제는 공짜로 얻어지는 성질이 아니다. 예산의 3분의 1을 먹는 설비다.

공공재는 발견되는 게 아니라 설계된다
1836년 법으로 민간 등대는 모두 강제 매수됐다. 흔히 국유화라고 부르지만 정확하지 않다. 등대가 넘어간 곳은 정부 부처가 아니라 1514년 헨리 8세가 특허장을 내준 선원 길드, 트리니티 하우스였다. 이 조직의 수입에서 등대와 부표가 차지하는 비중은 1760년 44퍼센트에서 1832년 85퍼센트로 올랐고, 그 돈은 늙은 선원과 미망인의 연금으로 나갔다. 연금 수급자는 1732년 2천 명에서 1834년 8,431명이 됐다. 국가냐 민간이냐는 물음은 양쪽 끝에서 다 무너진다.
통행료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지금도 영국과 아일랜드 항구에 들어오는 상선은 순톤수당 46펜스를 낸다. 최저 60파운드, 5만 톤에서 2만 3천 파운드로 상한이 걸리고, 한 해 아홉 항차까지만 부과된다. 걷는 주체는 여전히 트리니티 하우스이고, 근거는 법이 부과한 징수 의무다. 순수 공공재의 대표 사례는 300년 내내 강제 부과금으로 돌아갔다.
현대판을 하나 보자. GPS는 미국의 군사 인프라이고 미국 세금으로 굴러가지만 전 세계가 공짜로 쓴다. 배제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은 2000년 5월 1일까지 민간 신호에 일부러 오차를 섞어 정확도를 100미터로 묶어뒀다. 선택적 가용성이라 불린 그 장치를 끈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배제할 수 있는데 안 하기로 한 것이다.
1998년 트리니티 하우스는 마지막 등대지기를 노스 포어랜드에서 철수시켰다. 이제 불빛은 자동으로 켜지고 요금은 자동으로 청구된다. 교과서가 등대를 공공재라고 부를 때 지워버린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불빛의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특허장과 세관과 법률로 짜인 징수 장치 말이다. 어떤 재화가 공공재인지는 그 물건이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거기에 어떤 제도를 붙이느냐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