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는 무엇을 하는가
위약을 무처치와 맞붙인 시험 27개에서 통증은 100밀리미터 척도로 6.5밀리미터 줄었다
가짜 흡입기를 쓴 천식 환자는 45% 나아졌다고 느꼈지만 폐 기능은 아무것도 안 한 날과 같았다. 임상시험 위약군이 좋아지는 것의 상당 부분은 자연 경과와 가장 아플 때 병원에 오는 탓이고, 진짜 플라시보 효과는 통증 같은 주관적 증상에 몰려 있다. 그런데 가짜라고 밝히고 줘도 증상이 줄어드는 반전이 있다. 플라시보는 마법도 착각도 아닌, 치료받는 경험이 만드는 좁고 실재하는 효과다.
천식 환자 서른아홉 명이 몇 주에 걸쳐 같은 연구실을 열두 번씩 찾았다. 어떤 날은 진짜 기관지 확장제 흡입기를 받았고, 어떤 날은 똑같이 생긴 가짜 흡입기를 받았다. 가짜 침을 맞은 날도 있었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그냥 앉아 있다 간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환자는 두 시간 동안 폐활량계에 숨을 불어넣었고, 끝나면 얼마나 나아졌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겼다. 2011년 NEJM에 실린 결과는 이상하게 갈라졌다. 폐가 1초 동안 내뱉는 공기의 양은 진짜 약을 쓴 날에만 20% 늘었고, 가짜 흡입기와 가짜 침을 쓴 날은 약 7%에 그쳤다. 아무것도 안 한 날과 같은 수치다. 그런데 환자가 느낀 개선은 진짜 약 50%, 가짜 흡입기 45%, 가짜 침 46%로 거의 같았다. 아무것도 안 받은 날은 21%였다. 폐는 속지 않았는데, 사람은 분명히 나아졌다고 느꼈다.
플라시보에 대해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은 "가짜 약도 믿으면 낫는다"다. 이 실험은 그 말이 반만 맞다는 걸 한 장면에 담고 있다. 무엇이 나아졌고 무엇은 그대로였는지, 그 경계를 긋는 게 이 글의 일이다.
비처의 35퍼센트
"플라시보는 강력하다"는 믿음은 출발점이 분명하다. 1955년 미국 마취과 의사 헨리 비처가 JAMA에 쓴 논문 「강력한 플라시보」다. 비처는 여러 질병을 다룬 시험 15개를 모아, 환자 1,082명 가운데 평균 35%가 위약만으로 "만족스럽게 호전됐다"고 정리했다. 이 숫자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되는 플라시보 수치가 됐다.
1997년 독일의 귄버 킨레와 헬무트 키네가 이 15개 시험의 원 논문을 하나하나 다시 읽었다. 결론은 가혹했다. 비처가 플라시보 효과라고 부른 개선은 대부분 다른 이유로 설명됐다. 가벼운 감기 시험에서는 위약군의 35%가 엿새 안에 나아졌는데, 가벼운 감기는 엿새쯤이면 상당수가 저절로 낫는다. 원 논문 저자들도 이미 그렇게 적어 두었다. 수술 뒤 통증 시험 두 건에서는 시간이 지나며 진통제 요구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속도가 비처가 말한 "플라시보 효과"와 같았다. 15개 가운데 10개에서 저절로 좋아지는 흐름이 핵심 요인이었고, 10개는 인용 자체가 틀렸다. 기침약 시험에서는 위약군 22명 중 36%와 43%가 효과를 봤다고 썼지만, 원 논문에는 위약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고 22명짜리 위약군도 없었다. 그 논문의 공저자가 비처 자신이었다. 15개 가운데 한 시험에는 아무 처치도 받지 않은 비교군이 있었는데, 그 비교군은 위약군과 결과가 같았다.
킨레와 키네는 한발 더 나가 플라시보 효과가 아예 없다고까지 주장했는데, 이건 지나쳤다. 뒤에 보겠지만 효과는 있다. 다만 비처의 35%는 플라시보의 크기가 아니었다. 위약을 먹은 사람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합친 숫자였다.

무처치군이라는 거울
위약군이 좋아진 것 가운데 플라시보 덕분인 부분을 떼어 내려면 비교 대상이 하나 더 필요하다. 위약조차 받지 않은 무처치군이다. 임상에서 이 차이는 흔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사람은 대개 가장 아플 때 병원에 온다. 허리가 제일 심하게 쑤시는 주, 두통이 최악인 날 진료를 받고 시험에 등록한다. 그러니 다음 진료 때는 무엇을 주든, 아무것도 안 주든 대개 조금 덜 아프다. 극단에서 출발한 값이 보통 쪽으로 돌아오는 평균회귀다. 병 자체도 저마다의 경과를 따라 가라앉는다. 위약군만 보면 이 모든 게 약의 공으로 보인다. 앞의 천식 실험에서 아무것도 받지 않은 날에도 폐 기능이 7% 좋아졌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 7%는 연구실에 앉아 있는 동안 폐가 원래 그만큼 회복한 몫이다.
2001년 덴마크의 아스비에른 흐로비아르트손과 페테르 괴체가 바로 이 비교를 했다. 환자를 위약군과 무처치군에 무작위로 나눈 시험 130개를 모았다. 위약에는 알약뿐 아니라 가짜 시술, 대화 같은 심리적 개입도 들어갔다. 나았는지, 재발했는지처럼 '됐다, 안 됐다'로 갈리는 결과를 본 32개 시험에서 위약은 무처치와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수치로 재는 결과를 본 82개 시험에서는 작은 차이가 있었는데, 그마저 혈압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니라 환자가 직접 답하는 주관적 지표에 몰려 있었다. 통증 시험 27개를 합치면 100밀리미터 통증 척도에서 6.5밀리미터가 줄었다. 게다가 이 효과는 시험 규모가 클수록 작아졌다. 작은 시험일수록 부풀려지는 흔한 편향을 의심할 만한 신호였다. 두 사람은 이렇게 맺었다.

임상시험이라는 틀 바깥에서 위약을 쓸 정당한 근거는 없다. — 흐로비아르트손·괴체, 2001
2010년 코크란 갱신판은 시험 234개로 범위를 넓혔고, 그림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전체 효과는 작았고 통증과 메스꺼움에서만 비교적 뚜렷했다. 통증 효과는 편향 위험이 낮은 시험끼리도 거의 없음부터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들쭉날쭉했다. 같은 연구자 집단이 비슷하게 설계한 침 시험 네 건은 큰 효과를 냈고, 다른 통증 시험 세 건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금연, 우울, 고혈압, 불면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신뢰구간이 넓어 효과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지만, 뭐든 낫게 하는 힘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여겨볼 대목도 있었다. 알약보다 가짜 침 같은 몸에 닿는 위약에서, 그리고 환자에게 위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시험에서 효과가 더 크게 나왔다. 무엇을 주느냐만큼 어떻게 주고 어떻게 말하느냐가 결과를 흔든다는 뜻이다.
해마다 세지는 위약?
그러니 위약군의 개선을 곧 플라시보 효과로 읽으면 안 된다. 이 구분을 놓치면 흥미로운 발견도 엉뚱하게 읽힌다. 2015년 맥길대 연구팀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된 신경병증 통증 신약 시험 84개를 분석해, 위약군의 통증 감소가 해마다 커졌다고 보고했다. 약을 먹은 쪽의 반응은 제자리였으니 신약이 위약을 이기기가 점점 어려워진 셈이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이 경향은 미국에서 진행된 시험에서만 나타났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기간 미국 시험은 점점 길어지고 커졌는데, 연구팀은 이 변화가 큰 위약 반응과 함께 간다는 점을 찾아냈다. 기대가 해마다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시험 방식이 바뀌며 위약군 안에 담기는 것들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세진 건 시험 안의 '위약 반응'이지, 사람 몸속의 무언가라고 말할 근거는 아직 없다.
속이지 않는 가짜 약
여기까지만 보면 플라시보는 대부분 착시다. 그런데 반대 방향의 반전이 있다. 2010년 하버드의 테드 캡척 연구팀은 과민대장증후군 환자 80명에게 대놓고 가짜 약을 줬다. 약병에는 '플라시보 알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교군은 약 없이 같은 시간, 같은 태도로 의료진과 만났다. 3주 뒤 증상이 충분히 줄었다고 답한 비율은 가짜 약 쪽이 59%, 비교군이 35%였다.
다만 이것을 믿지 않아도 낫는다고 읽으면 틀린다. 연구진은 약을 건네며 이 알약이 심신의 자기 치유 과정을 통해 증상을 크게 개선한다는 연구가 있다고 설명했고, 플라시보 효과는 강력하며 꼬박꼬박 먹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속임수는 없었지만 기대는 공들여 심었다. 2023년의 네트워크 메타분석도 긍정적 기대가 있어야 효과가 난다고 봤다. 2021년 262명 규모의 후속 시험에서는 속이지 않는 위약이 약 없는 비교군보다 증상을 더 줄였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게 준 이중맹검 위약과는 차이가 없었다. 2016년 포르투갈에서는 만성 요통 환자에게 기존 치료에 더해 속이지 않는 위약을 3주간 줬더니, 10점 척도 통증이 1.5점 줄었다. 기존 치료만 받은 쪽은 0.2점이었다. 2021년 메타분석은 여러 질환에서 효과가 꽤 크다고 봤지만, 시험마다 결과 편차가 컸고 연구 자체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도 같은 선이 다시 그어진다. 2025년 만성 근골격계 통증 연구를 모은 메타분석은, 속이지 않는 위약이 환자가 답하는 통증과 기능 점수는 작거나 중간 정도로 낮췄지만 실제 몸의 기능 검사에는 효과가 없었다고 정리했다. 근거 수준은 낮았고, 환자가 자기가 뭘 받는지 아니 보고가 치우칠 위험도 컸다.
거꾸로 작동하는 기대
기대가 증상을 누그러뜨린다면 키울 수도 있다. 이를 노시보라고 부른다. 영국의 SAMSON 시험은 부작용 때문에 스타틴을 끊은 환자 60명에게 열두 달 동안 한 달짜리 약병 열두 개를 줬다. 넷에는 스타틴, 넷에는 위약이 들었고 넷은 비어 있었다. 매일 기록한 증상 점수는 빈 병을 받은 달 8.0, 위약을 먹은 달 15.4, 스타틴을 먹은 달 16.3이었다. 알약이 늘린 증상의 약 90%가 위약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증상이 꾸며낸 것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픔은 진짜였고, 다만 그 원인이 약 성분보다 약을 먹는다는 경험 쪽에 가까웠다. 이 결과가 향한 곳도 약을 끊는 쪽이 아니었다. 자기 기록을 확인한 참가자 60명 중 30명이 여섯 달 뒤 스타틴을 다시 먹고 있었다.

좁음을 아는 일
흩어진 결과를 모으면 선 하나가 보인다. 위약은 폐의 공기량을 늘리지 못했고, 감기를 빨리 낫게 하지 못했고, '됐다, 안 됐다'로 갈리는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몸의 기능 검사도 움직이지 못했다. 반면 통증, 메스꺼움, 불편감처럼 환자가 스스로 느끼고 답하는 영역에서는 작지만 실재하는 차이를 여러 번 만들었다. 뇌가 스스로 진통 물질을 내는 기제가 그 일부를 떠받친다는 증거도 1970년대부터 쌓였다.

그러니 플라시보는 몸을 고치는 마법도, 순전한 착각도 아니다. 누군가 내 증상을 들어 주고, 약병을 건네고,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경험, 곧 치료받는 경험이 주관적 증상의 크기를 조절하는 좁고 진짜인 효과다. 이 좁음을 아는 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느낌이 나아졌다고 병이 나은 건 아니다. 천식 환자가 가짜 흡입기로 45% 나아졌다고 느끼는 동안 폐는 그대로였다. 그 틈에서 치료를 미루면 위험해진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플라시보로 대신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반대로 이 좁은 효과를 무시할 이유도 없다. 좋은 설명과 성실한 태도는 진짜 약의 효과 위에 얹혀 환자의 하루를 조금 덜 괴롭게 만든다. 믿으면 다 낫는다는 말을 버리고 나서야, 믿음이 실제로 해 주는 몫이 제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