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방법을 숫자로 정하기 — 승점의 발명
승리 조건이 하나의 숫자가 되는 순간, 플레이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
체스는 왕을 잡으면 끝나지만, 현대 보드게임 대부분은 점수로 끝난다. 무엇에 몇 점을 붙이느냐는 채점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자의 가치 선언이고, 사람들은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정말 간다. 럭비 보너스 포인트의 프랑스식 개정부터 킹메이커와 샌드배깅, 승점 3점제가 실제로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까지. 판 밖으로 새어 나온 점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
체스에는 점수가 없다. 왕이 잡히면 끝이고,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열린 빌바오 체스 마스터스 파이널은 승리에 3점, 무승부에 1점, 패배에 0점을 매겼다. 축구 승점표를 체스판 위에 얹은 것이다. 더 이상한 건, 같은 대회가 레이팅 산정에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썼다는 점이다. 한 판의 대국이 두 개의 장부에 서로 다른 값으로 동시에 기록됐다. 무엇을 몇 점으로 칠 것인가. 이건 승부가 끝난 뒤의 회계 문제가 아니다. 승부가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지는지를 정해버리는 문제다.
같은 트라이, 다른 욕망
럭비 유니언의 보너스 포인트 제도만큼 이걸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1995년 뉴질랜드 국내 챔피언십에서 만들어져 이듬해 슈퍼12로, 2003년 월드컵으로 번진 표준형은 이렇게 생겼다. 승리 4점, 무승부 2점, 패배 0점. 여기에 승패와 상관없이 트라이를 4개 이상 올리면 1점, 7점 차 이내로 지면 또 1점.
계산해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크게 뒤진 팀이 트라이를 몰아치고 마지막에 따라붙어 한 점 차로 지면, 진 채로 2점을 챙긴다. 프랑스 프로 리그는 이 구조를 거부했다. 한 경기에서 보너스 두 개를 동시에 가져가지 못하게 막고, 트라이 보너스의 조건을 "상대보다 트라이를 3개 이상 더 기록하며 이겼을 때"로 바꿨다. 2016년 슈퍼럭비가 이 프랑스식을 채택했고, 이듬해 럭비 챔피언십이 따라갔다.
같은 종목, 같은 트라이, 같은 80분이다. 바뀐 건 숫자표 한 장이다. 그런데 한쪽 규정 아래에서 선수들은 20점 차로 지고 있어도 네 번째 트라이를 향해 달리고, 다른 쪽에서는 그 질주에 아무 값도 붙지 않는다. 점수는 채점 방식이 아니다. 무엇을 잘한 일로 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고, 선언은 곧바로 욕망이 된다.

두 규정의 차이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표준형의 트라이 보너스는 절대 기준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4개를 채우면 준다. 프랑스형은 상대적 기준이다. 이기면서 상대보다 3개를 더 해야 준다. 앞의 배점표는 물량에 값을 매기고, 뒤의 배점표는 우위에 값을 매긴다. 논쟁의 대상은 경기장도 규칙서도 아니고 배점표 한 장이다.
살아남기에서 모으기로
오래된 게임들의 문법은 제거였다. 체스의 체크메이트처럼, 승리 조건이 아니라 패배 조건이 먼저 있었다. 게임 메커니즘을 정리한 표준적인 설명은 이렇게 말한다.
승리 조건은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기는지를 통제한다. 많은 게임에서 승리는 충분히 높은 점수를 쌓았거나 다른 누구보다 높은 점수를 얻은 플레이어에게 돌아간다.
현대 보드게임, 특히 유로게임이라 불리는 계열은 이 축을 통째로 옮겼다. 이 계열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플레이어 탈락의 부재다. 아무도 중간에 쫓겨나지 않는다. 대신 게임은 정해진 라운드 수나 자원 고갈로 끝나고, 그 순간 모두가 점수를 센다. 승리 경로도 하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종료 시점 보너스를 겨냥하는 여러 갈래가 동시에 열려 있고, 공개되지 않은 목표 카드가 마지막에 순위를 뒤집기도 한다.
승점을 여러 갈래로 흩뿌리는 건 설계상 계산이 선 선택이다. 점수가 한 줄기로만 나오면 최적 경로도 하나여서, 그걸 먼저 발견한 사람이 매번 이긴다. 건축물에도 주고 배달에도 주고 남은 자원에도 주면, 옆자리가 무엇을 노리는지가 그 자체로 정보가 되고 판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대신 값을 치른다. 점수원이 늘수록 각 행동의 값어치는 흐려지고, 최종 합계는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개표 결과에 가까워진다.
이건 친절한 개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게임의 질문이 통째로 바뀐 것이다. "누가 끝까지 살아남았나"에서 "누가 더 많이 모았나"로. 그리고 새 질문에는 새 병이 따라온다.

이길 수 없는 사람이 결정한다
마지막 라운드, 세 명이 앉아 있다. 1등과 2등은 2점 차, 3등은 아무리 잘해도 그 둘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3등의 손에 카드 한 장이 남아 있고, 그 카드를 누구에게 쓰느냐가 1등을 정한다. 테이블이 조용해진다. 두 사람이 동시에 3등을 쳐다본다. 게임은 끝났는데 끝나지 않았다.

이 순간 3등이 무엇을 하든 이상해진다. 원칙대로 자기 점수를 최대화하면 그건 곧 특정 상대를 밀어주는 일이고, 아무것도 안 해도 역시 밀어주는 일이다. 중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선택은 게임 밖의 사정 — 지난주에 누가 뒤통수를 쳤는지, 오늘 누가 밥을 샀는지 — 으로 기울기 쉽다. 이겨야 할 이유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이유가 들어오는 것이다.
킹메이커 시나리오다. 이길 수 없는 플레이어가 다른 누가 이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 고전적인 예시는 검투사 셋이다. 강함이 3, 4, 5인 셋이 붙는데 진 쪽이 탈락한다면, 첫 싸움에 나선 자가 킹메이커가 된다. 이기는 검투사는 첫 싸움에 끼지 않은 쪽이기 때문이다. 자기 승리와 무관한 선택이 남의 승패를 전부 정하는 것, 이건 제거형 게임에도 있었지만 점수제에서 훨씬 흔해진다. 순위가 숫자로 늘 보이니까, 자기가 몇 등인지도 남이 몇 등인지도 모두가 상시로 안다.
숫자가 만든 병, 숫자로 가리기
그래서 설계자들은 숫자를 흐린다. 킹메이커를 억제하는 가장 흔한 처방이 이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승점 총합을 감춘다.
누가 1등인지 확실치 않으면 왕을 만들어줄 수도 없다. 뒤집어 말하면, 히든 점수는 정보를 숨기는 장치가 아니라 책임을 없애는 장치다. 3등이 카드를 어디에 쓰든 그게 누구를 왕으로 만드는 선택인지 본인도 모르니까, 그냥 자기 점수를 늘리는 수를 두면 된다. 마지막 라운드에 다시 게임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승을 동시에 치러 순서에서 생기는 유불리를 없애거나, 아예 규정으로 킹메이커를 노린 비신사적 행위를 금지하는 처방도 쓰인다.
거꾸로 껴안는 설계자도 있다. 콜 웨를리는 킹메이킹을 강력한 서사 도구로 본다. 진영들이 서로 관계를 쌓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건 점수를 붙였기 때문에 생긴 문제를 점수의 가시성으로 다루는 일이다.

같은 계보에 샌드배깅이 있다. 체스에서 낮은 등급 부문에 나가려고 레이팅을 일부러 떨어뜨리고, 골프에서 핸디캡을 실제보다 나쁘게 신고하고, 레이싱에서 차가 낼 수 있는 것보다 느리게 예선을 도는 행위. 공통점은 하나다. 자기 능력을 실제보다 낮게 보이게 만드는 것. 이런 짓은 능력에 숫자가 붙어 있고 그 숫자가 다음 판의 조건을 정할 때만 성립한다. 점수제가 없으면 샌드배깅도 없다.
점수 되는 플레이와 재미있는 플레이
축구의 승점 3점제는 지미 힐의 제안으로 1981년 잉글랜드에서 도입됐고, 1994년 월드컵을 거쳐 1995년 FIFA가 공식 채택했다. 효과는 실제로 측정됐다. 지안카를로 모스키니는 35개국 30년치 데이터로 무승부 비율이 유의하게 줄고 기대 득점이 늘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같은 규칙의 다른 얼굴도 측정됐다. 알렉산더 딜거와 한나 가이어는 독일 리그와 컵 대회를 비교해, 무승부가 줄고 한 골 차 승부가 늘어난 것과 함께 이런 변화를 짚었다. 앞서고 있는 팀이 더 수비적으로 바뀐다는 것. 그 팀의 슛도 줄고 상대에게 내주는 기회도 줄어든다. 승점 3점을 지키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경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이라면, 선수는 재미없게 만든다.

테이블 위에서 이 어긋남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종료 시점 보너스가 크게 잡힌 게임에서는 초중반의 촘촘한 수읽기가 마지막 정산 한 번에 통째로 지워지기도 한다. 세 시간을 아름답게 운영한 사람이, 마지막 라운드에 목표 카드 두 장을 맞춘 사람에게 진다. 규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판을 복기하면 앞의 세 시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애매해진다. 배점이 뒤로 몰릴수록 게임은 결승선 직전의 단거리 경주가 되고, 그 전 구간은 준비 운동이 된다.
숫자를 올린다고 늘 원하는 플레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2015-16 웨일스 프리미어 디비전은 트라이를 6점으로 올리는 실험을 했다. 더 빠르고 더 달리는 럭비를 의도한 개정이었다. 결과는 의도대로 나오지 않았고 이듬해 원상 복구됐다. 점수는 플레이를 바꾸지만, 시키는 대로 바꾸지는 않는다.
판 밖으로 새어 나온 승점
포뮬러 원은 1950년부터 우승에 8점을 줬고, 1961년에 9점, 1991년에 10점으로 올렸다가 2010년 25점으로 껑충 뛰었다. 득점권도 상위 6위에서 10위까지 넓혔다. 우승 한 번의 무게를 다시 정하는 일이었고, 이런 배점 구조는 게임이론의 대상으로 따로 연구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점수는 판 밖으로 나왔다. 1982년 액티비전은 고득점을 낸 플레이어에게 화면을 찍어 보내게 하고 헝겊 패치를 부쳐줬다. 그 계보가 2005년 엑스박스 360의 게이머스코어로, 2008년 플레이스테이션 트로피로 이어졌다. 여기서 관찰된 현상이 흥미롭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업적 해제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그 업적을 주는 게임을 딱히 즐기려 하지는 않는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숫자가 오르니까 한다.
이 지점이 승점의 발명이 도달한 가장 먼 곳이다. 원래 점수는 게임 안에서 승자를 가리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데 게임 밖에 설치된 점수는 승자를 가리지 않는다. 끝이 없으니까. 다만 무엇을 할 가치가 있는 일로 칠지만 계속 가리킨다. 럭비 배점표가 선수를 네 번째 트라이로 달리게 한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라이너 크니지아는 900종이 넘는 게임을 설계했고, 그의 사이트에 걸린 문장은 단 하나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 승점표는 그 즐거움을 어디에 놓을지 가리키는 화살표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사람들은 정말 간다. 문제는 화살표를 그리는 사람이 늘 자기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겼던 판을 떠올려보자. 그때 당신이 한 플레이는 정말 하고 싶었던 플레이였나, 아니면 점수가 되는 플레이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