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 새 물건 값을 떠받치는 시장
아마존 데이터로 측정했더니 헌책 판매의 16퍼센트만이 새 책 구매를 대체했다
중고는 흔히 새것의 그림자, 형편이 안 될 때의 차선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전 유럽에서 중고 의류는 주변부가 아니라 옷 유통의 주 경로였고, 지금도 3년 뒤 중고차 시세 전망치가 오늘 서명하는 신차 리스 계약의 월납을 정한다. 되팔 수 있다는 사실이 새 물건의 값에 미리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되팔 권리를 거둬가는 쪽 — 전자책과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부품 잠금 — 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1777년 잉글랜드 요크의 스톤게이트 거리, 전당포 주인 조지 페츠의 장부에는 한 주에 백오십 건쯤의 담보가 적혔다. 맡겨진 물건의 대부분은 옷이었다. 어느 4주 동안 비단 가운 열한 벌이 평균 4실링 5펜스에, 면 가운 스무 벌이 3실링 11펜스에, 거친 모직 가운 열네 벌이 2실링 5펜스에 잡혔다. 1777년과 1778년 두 해 동안 이 가게를 거쳐 간 손님은 이천 명이 넘었고 다수가 여성이었다. 그들은 옷을 맡기고 돈을 빌렸다가 주급이 들어오면 되찾았고, 다음 주에 다시 맡겼다. 옷이 옷이면서 동시에 돈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그 옷을 받아줄 시장이 근처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중고를 새것의 그림자로,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차선으로 여긴다. 그런데 역사와 숫자를 같이 놓고 보면 순서가 거꾸로다. 되팔 수 있다는 사실이 새 물건의 값을 떠받친다.
옷이 돈이던 시절
베벌리 르미어가 1988년 《저널 오브 브리티시 스터디스》에 쓴 논문의 출발점은 이상한 공백이다. 산업화 이전 잉글랜드의 중고 의류 거래는 규모가 컸는데도 기록이 거의 없다. 이 거래를 규제하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미어는 일기와 광고, 상공인명부, 재판 기록을 뒤져 이 보이지 않는 유통망을 복원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중고 의류 거래는 주변부가 아니라 잉글랜드 인구의 상당 부분에게 옷을 공급한 주 경로였다.
이유는 비싸서다. 옷은 손으로 만들었고, 직물 자체가 값나갔다. 귀족은 입던 옷을 하인에게 넘겼고 하인은 그걸 입기도 했지만 대개 팔았다. 런던 하운즈디치와 페티코트레인 일대에 상설로 서던 래그 페어에서는 최상류층이 입던 옷부터 누더기까지 한자리에서 거래됐다. 파리에는 프리피에라 불리는 중고 의류상이 13세기 기록에 이미 등장하고, 앙시앵레짐 말기에는 동업조합을 갖춘 어엿한 상인 집단이었다. 케이트 켈시 스테이플스는 1200년에서 1600년 사이 유럽의 중고 거래가 도시 경제의 핵심 제도였음을 정리한다. 판매자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이들은 런던의 옷차림을 지방 소도시로 실어 나르는 유통망이기도 했다. 유행이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는 경로가 곧 중고 의류의 경로였다.
그러니까 "중고는 가난의 흔적"이라는 통념은 순서를 뒤집은 말이다. 옷은 보통 사람의 살림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 축에 들었고, 그래서 유언장에 이름이 적혔고 전당포에 잡혔고 훔칠 만한 물건이었다. 자산이었기 때문에 되팔렸다. 그리고 중고 거래가 주류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사람들이 부유해져서가 아니라 산업혁명이 새 옷을 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고의 위상은 빈곤의 함수가 아니라 가격 구조의 함수다.

되팔 수 있어서 더 비싸게 팔린다
주디스 슈발리에와 오스턴 굴스비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열 학기 동안 팔린 심리학·생물학·경제학 대학 교재 전체를 들여다봤다. 질문은 이것이다. 학생들은 책을 살 때 나중에 되팔 값을 계산에 넣는가. 대학 서점은 통상 정가의 50퍼센트에 헌책을 사들여 75퍼센트에 되판다. 출판사는 헌책 시장을 죽이려고 개정판을 낸다. 두 사람의 결론은 학생들이 이 판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정판이 나와 되팔지 못할 확률까지 반영해 새 책에 지불할 값을 정한다. 워낙 잘 읽고 있어서, 출판사가 개정 주기를 앞당겨봐야 수익이 늘지 않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까지 나왔다.
자동차에서는 이 계산이 아예 제도화돼 있다. 리스 월납은 대략 차값에서 계약 만료 시점의 잔존가치를 뺀 금액, 즉 예상 감가를 나눠 내는 구조다. 그래서 리스사는 3년 뒤 중고 시세를 먼저 예측하고 그 숫자에서 거꾸로 월납을 뽑는다. 36개월 계약의 잔존가치는 대체로 신차가의 절반 안팎에서 정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제조사는 안 팔리는 모델을 밀어내려고 잔존가치를 실제 예상보다 높게 매긴다. 월납이 내려가고 차가 나간다. 업계는 이걸 서벤션이라 부른다. 중고차 시장은 보통 정보 비대칭의 교과서 사례로 불리지만, 신차 가격표 앞에서 중요한 건 정보가 아니라 숫자다. 3년 뒤 중고 시세 전망치가 몇 퍼센트냐에 따라 오늘 서명하는 계약서의 금액이 달라진다.

중고 시세는 새 물건이 팔린 뒤에 생기는 결과가 아니다. 새 물건의 가격표 안에 미리 들어가 있는 항목이다.
잠식은 정확히 얼마나 일어나는가
"중고가 새 제품을 잡아먹는다"는 주장은 검증이 가능하다. 아닌디아 고스와 마이클 스미스, 라훌 텔랑은 2006년 아마존의 새 책과 헌책 시장 데이터로 이걸 측정했다. 헌책 가격에 대한 새 책 수요의 교차가격탄력성은 0.088. 헌책 판매의 16퍼센트만이 새 책 구매를 대체했고, 나머지 84퍼센트는 새 책 가격에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래였다. 소비자 잉여는 연간 6,721만 달러, 사회 전체 후생은 8,792만 달러 늘었다.
여기서 16퍼센트를 0으로 읽으면 안 된다. 잠식은 실재하고, 다만 작고, 나머지는 시장 확대다. 조건도 붙는다. 가이드와 리는 2010년 경매로 지불의사를 측정해, 소비자용 제품에서는 새 제품과 재제조품의 입찰자가 거의 겹치지 않아 잠식 위험이 미미하지만 상업용 제품에서는 입찰자가 겹쳐 잠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결과를 얻었다. 자동차를 다룬 2018년 연구는 내구성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을 짚는다. 자사의 미래 신차 판매를 갉아먹는 잠식 효과와, 경쟁사의 신차·중고차 수요를 뺏어오는 경쟁 효과. 둘 중 어느 쪽이 큰지를 실증으로 재보려 한 시도가 그때까지 없었다는 것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시장 규모 숫자는 더 조심해야 한다. 널리 인용되는 스레드업 리세일 리포트는 중고 의류 플랫폼이 직접 발주한 자료다. 이해관계가 있다. 2025년 3월에 나온 13차 보고서는 미국 중고 의류 시장이 2029년 740억 달러, 세계 시장은 3,670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하는데, 같은 회사의 이전 보고서는 2027년에 700억 달러를 전망했었다. 두 숫자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방향만 받고 자릿수는 범위로 두는 편이 정직하다.
되팔 수 있는 물건의 값
되팔 수 있다는 성질 자체가 가격을 만드는 물건도 있다. 빅토리아 도브린스카야와 율리아 키실로바는 1987년부터 2015년까지 레고 세트 2,322종의 2차 시장 가격을 추적해 연평균 11퍼센트 이상, 물가를 빼면 8퍼센트의 수익률을 보고했다. 미술품이나 와인, 클래식카 같은 다른 수집재보다 높은 수치다. 물론 사라진 세트는 표본에 안 잡힌다는 한계가 있고, 이건 투자 권유가 아니라 2차 시장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보여주는 관찰이다.
보드게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절판된 게임은 값이 오르고 재판이 확정되면 곧장 내린다. 보드게임긱 마켓플레이스의 시세는 거의 실시간으로 그 소식을 반영한다. 게이머가 오만 원짜리 게임을 집어 들며 "안 맞으면 팔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게임의 실질 가격은 이미 오만 원이 아니다. 몇 년 뒤 회수할 금액을 뺀 값이다. 되팔 창구를 닫으면 그 사람은 같은 게임에 같은 돈을 내지 않는다.

되팔 권리가 사라질 때
그래서 법은 이 권능을 어떻게 다뤄왔나. 19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밥스메릴 대 스트라우스 사건이 출발점이다. 출판사는 소설 《캐스터웨이》 판권면 아래에 경고를 박아 넣었다.
이 책의 소매가는 1달러다. 어떤 소매상도 그보다 싸게 팔 권한이 없으며, 더 싸게 파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로 다룬다.
메이시스 백화점이 그보다 싸게 팔았고, 대법원은 출판사 편을 들지 않았다. 저작권은 복제를 통제하는 권리지 한 번 적법하게 팔린 그 책이 다음에 누구에게 얼마에 넘어가는지를 통제하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최초판매원칙이고, 1976년 저작권법 109조로 성문화됐다. 2013년 커트생 대 존와일리 사건에서 대법원은 6 대 3으로 이 원칙에 지리적 한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태국에서 싸게 찍은 영문 교재를 들여와 되판 유학생이 이겼다.

유럽은 더 흥미롭게 갈라졌다. 2012년 유럽사법재판소는 유즈드소프트 대 오라클에서, 기간 제한 없이 쓸 권리를 경제적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넘겼다면 내려받은 소프트웨어 복제본에도 배포권이 소진된다고 판단했다. 단 조건이 붙는다. 판 사람은 자기 복제본을 못 쓰게 만들어야 하고, 다수 이용자 라이선스를 쪼개 팔 수는 없다. 그런데 2019년 톰카비닛 사건에서 같은 법원이 전자책에는 같은 논리를 확장하지 않았다. 전자책을 내려받게 하는 행위는 배포가 아니라 공중전달이므로 소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지침을, 전자책은 인포소크 지침을 따른다는 이유였다. 같은 법원이 7년 만에, 파일에 붙은 법적 이름표에 따라 되팔 권리를 갈라놓았다.
소유가 아니라 이용허락
물리적 물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품 잠금이 그렇다. 정품과 규격이 같은 부품을 끼워도 기기가 인증을 거부해 기능이 죽는 방식이다. 이건 수리를 막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중고 부품 시장을 통째로 없앤다. 고장 난 기기가 부품 공급원이 아니라 폐기물이 되기 때문이다. 오리건주는 2024년 3월 28일 SB 1596에 서명하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부품 잠금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2025년 1월 1일 이후 제조된 기기가 대상이다.
여기서 소유란 무엇인가를 새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훨씬 좁은 질문이면 충분하다. 내가 산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가. 넘길 수 있으면 그건 물건이고, 넘길 수 없으면 그건 이용허락이다. 그리고 앞의 연구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넘길 수 없는 물건은 넘길 수 있는 물건보다 싸야 맞다. 교재를 사는 학생도, 리스 계약서에 서명하는 사람도, 절판을 기다리는 보드게이머도 모두 그 차액을 계산에 넣는다. 문제는 게임 라이브러리와 전자책 서가와 부품이 잠긴 기기 앞에서만큼은 우리가 그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되팔 수 없게 된 물건에 여전히 되팔 수 있던 시절의 값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