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는 길을 잃게 하지 않는다
외길 라비린스와 갈림길 미로 사이, 인간이 방황을 다뤄 온 방식
테세우스가 실을 풀며 들어간 크레타 미궁에서 그는 사실 길을 잃을 수 없었다. 외길 라비린스와 갈림길 미로는 정반대이며, 그 차이가 순례와 놀이와 뇌과학을 갈라놓는다. GPS 시대에 우리가 진짜 잃는 것은 무엇인가.
테세우스가 실타래를 풀며 들어간 그 미궁에서, 사실 그는 결코 길을 잃을 수 없었다.
우리는 크레타의 미궁을 이렇게 상상한다. 어둠 속에서 갈래길이 끝없이 갈라지고, 잘못 든 통로마다 미노타우로스의 숨소리가 울리는 함정.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이 없었다면 영웅은 영영 나오지 못했을 미로. 그런데 고대인이 동전과 벽에 새긴 라비린스(labyrinth)의 실제 도상을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거기엔 갈림길이 하나도 없다. 입구에서 시작된 단 하나의 길이 안으로 안으로 감겨 들어가 중심에 닿고, 다시 같은 길로 되돌아 나온다. 실타래가 필요 없는 구조다. 길이 하나뿐이니까.
이 사소해 보이는 사실이 실은 이 이야기의 전부다. 우리가 '미로'라고 뭉뚱그리는 말 속에는 정반대의 두 가지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종교와 놀이와 뇌과학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갈라놓았다.
라비린스와 미로는 정반대다
전문 용어로 구분하면 이렇다. 갈림길이 없는 외길을 유니커설(unicursal), 갈래가 나뭇가지처럼 뻗어 선택을 강요하는 것을 **멀티커설(multicursal)**이라 부른다. 고전 라비린스는 유니커설이다. 복잡하게 감겨 있어 걷는 데 한참 걸리지만, 절대 헤맬 수 없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오늘날 '미로(maze)'라 부르는 것은 멀티커설이다. 갈림길마다 판단을 요구하고, 틀리면 막다른 벽에 부딪힌다. 하나는 헤맬 수 없고, 다른 하나는 헤매라고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름부터가 함정이다. 라비린토스(labyrinthos)는 그리스어 이전, 정체불명의 선주민 언어에서 왔다. 1892년 막시밀리안 마이어는 이 말이 '양날 도끼'를 뜻하는 라브리스(labrys)에서 왔다고 제안했다. 크레타 궁전 곳곳에 새겨진 그 도끼 문양 때문이다. 그럴듯한 가설이지만, 언어학자 로베르트 베이케스는 이 연결을 "사변적"이라며 오히려 '좁은 골목(laura)'과의 관계를 제시한다. 요컨대 이 단어의 뿌리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더 흥미로운 건 위치조차 흔들린다는 점이다.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호메로스는 라비린스를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헤로도토스가 "라비린토스"라 부르며 감탄한 거대 건축은 크레타가 아니라 이집트에 있었다. 후대에 로마가 크레타를 정복한 뒤에는 고르틴의 채석장 동굴이 미궁으로 오인되며 신화의 주소가 또 한 번 흐트러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7겹 외길 도상이 크노소스의 은화에 처음 새겨진 것은 기원전 400년경, 신화가 이미 수백 년 묵은 뒤의 일이다. 다시 말해 '크레타의 미궁'이라는 그림 자체가 여러 세기에 걸쳐 조금씩 조립된 사후의 구성물이다.
라비린스는 길을 잃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정해진 한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장치다. 헤맴이 아니라 순종의 건축이다.

크노소스라는 통설의 빈틈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은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이었다." 여행 가이드북마다 적혀 있는 이 문장의 근거는 사실 놀라울 만큼 얇다.
그 통설을 만든 사람은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다. 1878년 크레타 상인 미노스 칼로카이리노스가 먼저 파낸 언덕을, 에번스가 1900년부터 대대적으로 발굴하며 '미노스의 궁전'이라 이름 붙였다. 천 개가 넘는 방, 다층 구조, 상수도와 수세식 배수, 그리고 황소를 뛰어넘는 사람들을 그린 프레스코. 에번스는 궁전 곳곳의 양날 도끼 문양을 근거로 "라비린스란 곧 도끼의 집"이라 선언했고, 황소 도상을 미노타우로스 신화의 메아리로 읽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정황일 뿐이라는 데 있다. 21세기 고고학자 상당수는 크노소스를 미노스의 미궁으로 단정하는 결론을 거부한다. 황소는 미노아 문명 전반에 흔한 상징이었지 크노소스만의 것이 아니었고, 미노스 왕이 실존했다거나 이곳에 살았다는 물적 증거는 없다. 에번스는 한술 더 떠 부서진 궁전을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하고 파편뿐인 프레스코를 상상으로 '복원'했다. 오늘 크노소스에서 우리가 보는 선명한 붉은 기둥과 벽화의 상당 부분은 청동기 크레타가 아니라 20세기 에번스의 해석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이 과잉 복원은 고고학계에서 두고두고 논쟁거리다.
말하자면 우리는 한 고고학자의 상상력이 콘크리트로 굳은 풍경을 보며 신화를 확인했다고 믿는 셈이다. 크노소스는 진짜 청동기의 경이다. 동시에,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다시 짓는가에 관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성당 바닥의 순례
외길 라비린스가 가장 아름답게 부활한 곳은 뜻밖에도 중세 성당의 바닥이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서쪽 신랑(nave) 돌바닥에 1200년에서 1220년 사이 새겨진 라비린스가 그것이다. 지름 약 13미터, 11겹으로 감긴 단 하나의 길, 총 길이 약 261미터. 지금까지 온전히 남은 유일한 고딕 시대 바닥 라비린스다.
흔히 이렇게 설명된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날 수 없던 가난한 중세인들이 이 길을 무릎으로 기어 돌며 '예루살렘의 길(Chemin de Jérusalem)'이라는 대체 순례를 했다고. 감동적인 그림이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통념을 걷어내야 한다. 중세 당대에 사람들이 실제로 이 라비린스를 걸었다거나 무릎으로 기었다는 문헌 증거는 사실상 없다. 관련 기록은 대부분 중세 이후에 나타나며, 후대가 붙인 합리화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유행하는 '라비린스 걷기 명상'을 잃어버린 영성의 '재발견'이라 부르는 태도 자체가, 실은 근대의 발명에 가깝다는 뜻이다.
최근 연구가 제시하는 원래 용도는 오히려 더 낯설다. 부활절 저녁 기도에서 성직자들이 이 라비린스 위를 노란 양모 공을 주고받으며 리듬에 맞춰 춤추듯 움직였다는 것이다.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를 몸으로 그린 전례. 무릎으로 기는 고행이 아니라, 축제의 춤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용도가 무엇이었든 형태의 논리는 분명하다. 이것은 유니커설이다. 선택이 없다. 신 앞에서 인간이 할 일은 갈림길에서 영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굽이를 끝까지 걷어내며 중심에 이르는 것. 라비린스는 헤맴을 지우고 방향을 미리 정해 준다.

미로가 오락이 되던 순간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헷갈리는 미로'는 언제 태어났을까. 갈림길과 막다른 길, 낄낄대는 즐거움으로서의 미로는 종교가 아니라 정원에서 왔다.
대표적 상징이 영국 햄프턴 코트 궁전의 산울타리 미로다. 1690년경, 오라녜 공 윌리엄 3세를 위해 정원사 조지 런던과 헨리 와이즈가 심었다. 사다리꼴 부지에 서어나무를 심어 만든 이 미로는 3분의 1에이커 남짓한 땅에 약 0.8킬로미터의 길이 얽혀 있고, 영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산울타리 미로다. 결정적으로 이것은 멀티커설이다. 방문객은 갈림길마다 선택해야 하고, 틀리면 되돌아 나와야 한다. 당대로선 파격이었다.
여기서 라비린스와 미로의 세계관이 완전히 갈라진다. 성당 바닥의 외길이 '헤맴의 제거'라면, 정원의 미로는 '헤맴의 상품화'다.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오후의 오락이 되는 순간, 인류는 방황을 놀이로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웃으며 막다른 길에 부딪히고, 동행을 놀리고, 마침내 출구를 찾는 쾌감. 미노타우로스가 사라진 자리에 티타임이 들어섰다.
우연이 아니다. 갈림길이 놀이가 되려면 먼저 길 잃음이 안전해져야 한다. 굶주림도 맹수도 없는 산울타리 안에서, 최악의 결말이라야 겨우 몇 분의 헛걸음뿐인 곳에서만 헤맴은 스릴로 바뀐다. 방황을 공포에서 오락으로 옮겨 놓은 것은 미로 설계자의 재주가 아니라, 길 잃음의 대가를 0에 가깝게 줄여 준 그 시대의 여유였다.

길찾기의 뇌, 그리고 잃어버린 감각
여기까지가 문화의 이야기라면, 마지막 장면은 우리 머릿속에 있다. 인간은 애초에 어떻게 길을 기억하고 헤매는가.
1971년 신경과학자 존 오키프는 쥐의 해마(hippocampus)에서 기묘한 세포를 발견했다. 동물이 특정 장소에 있을 때만 발화하는 '장소 세포(place cell)'다. 뇌가 외부 자극에 단순 반응하는 게 아니라 방향과 거리를 담은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2005년 노르웨이의 마이브리트·에드바르 모세르 부부는 해마 옆 내후각 피질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을 찾았다. 정육각형 격자 패턴으로 규칙적으로 발화하는 '격자 세포(grid cell)'. 뇌 안에 좌표계가, 말하자면 내장된 모눈종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발견으로 세 사람은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우리 뇌 속의 GPS를 찾아낸 공로였다.
이 지도가 쓰면 자란다는 증거도 있다. 2000년 엘리너 매과이어 연구진이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를 스캔했다. 2만 5천 개 도로와 무수한 골목을 통째로 외워야 하는 '더 날리지'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뒤쪽 해마는 일반인보다 유의미하게 컸고, 그 크기는 운전 경력에 비례했다. 길을 몸으로 익힌 세월이 뇌의 물리적 부피로 새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 방향도 가능하지 않을까. 2020년 루이자 다마니와 베로니크 보봇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연구가 그 불길한 대칭을 가리킨다. 평소 GPS에 많이 의존한 사람일수록, GPS 없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 공간 기억 능력이 떨어졌다. 3년 뒤 추적에서 그 사이 GPS 사용이 늘어난 사람일수록 해마 의존적 공간 기억의 감퇴가 더 가팔랐다. 화살표를 따라가기만 할 때 뇌는 스스로 지도를 그리기를 멈춘다.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잃는다.
여기서 라비린스의 논리와 GPS의 논리가 소름 끼치게 닮았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둘 다 선택을 지워 준다. 라비린스가 신 앞에서 방향을 미리 정해 주었듯, 내비게이션은 갈림길에서 우리 대신 판단한다. 다만 성당의 외길은 우리를 중심으로, 침묵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데려갔다. 스마트폰의 파란 화살표는 우리를 목적지로만 데려간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방금 지나온 길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이 진짜 무서웠던 이유는 갈림길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나올 길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 그 판단의 무게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무게를 기꺼이 손안의 기계에 넘겨주고 있다. 편리하다. 다만 한 가지만 물어보자. 실타래를 쥐여 주는 존재에게 길을 온전히 맡길 때, 우리가 잃는 것은 방향감각뿐일까, 아니면 스스로 헤매고 스스로 빠져나올 줄 아는 능력 자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