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제국 — 단맛이 부린 노예와 권력의 정치
설탕값이 싸진 것은 자연이 아니라 노예제·플랜테이션·제국이 만든 일이었다
홍차에 각설탕 하나를 떨어뜨리는 그 무심한 동작 뒤에는, 자연이 아니라 채찍과 사슬과 대양을 건넌 배들이 서 있다.
홍차에 각설탕 하나를 떨어뜨리는 그 무심한 동작 뒤에는, 자연이 아니라 채찍과 사슬과 대양을 건넌 배들이 서 있다.
우리는 단맛이 값싸진 것을 일종의 진보처럼 여긴다. 기술이 좋아지고 유통이 발달해서, 한때 왕만 먹던 것을 이제 누구나 먹는다고. 그러나 설탕의 값이 떨어진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서사는 무너진다. 설탕이 흔해진 것은 사탕수수가 저절로 순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카리브해의 섬들이 사람을 갈아 넣는 공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1985년 『설탕과 권력』에서 밀어붙인 논지가 바로 이것이다. 단맛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였다.
왕의 사치품이었을 때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향신료였다. 약재였고, 방부제였고, 무엇보다 부의 과시였다. 후추나 육두구와 같은 진열장에 놓였고, 값은 그만큼 비쌌다. 15세기 잉글랜드의 연회에서 설탕은 먹는 것이라기보다 조각하는 것이었다. 요리사들은 설탕과 아몬드를 반죽해 성이나 동물, 문장(紋章)을 빚어 식탁에 올렸다. 그것을 씹어 삼키는 순간, 손님은 주인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함께 삼켰다.
약으로서의 설탕도 마찬가지였다. 당대 의학은 설탕을 소화를 돕고 기운을 북돋우는 만병통치에 가깝게 여겼고, 값이 비쌌기에 그 처방은 부자의 것이었다. "약처럼, 그리고 향신료처럼" 취급되던 이 하얀 결정은 곧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설탕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의 증거였던 시대에는, 검게 썩은 이빨조차 유행의 표식이 될 수 있었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단것을 즐겨 이가 거뭇했다는 이야기는 이 역설을 압축한다.
이 시절의 단맛은 철저히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왕이 먼저 맛보고, 귀족이 흉내 내고, 그 아래로 조금씩 스몄다. 설탕은 계급의 언어였다. 문제는 이 언어를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싶어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요를 채우려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노동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카리브해라는 설탕 공장
전환점은 17세기 중반 바베이도스였다. 담배와 목화를 짓던 작은 섬이 1640년대에 사탕수수로 갈아탔고, 곧 자메이카를 비롯한 서인도제도 전역이 그 뒤를 따랐다. 사탕수수는 까다로운 작물이다. 베어낸 즉시 짜서 끓이지 않으면 당분이 상하기에, 밭과 공장이 한 몸으로 붙어 정확한 순서와 속도로 돌아가야 한다. 플랜테이션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공장보다 먼저 등장한 규율과 시간표와 분업의 체제였다. 감독의 채찍 아래 사람들은 시계처럼 움직이도록 강요당했다. 그 톱니바퀴에 사람이 들어갔다.
노예선 항해 데이터베이스(SlaveVoyages)의 집계에 따르면, 1500년대부터 1860년대까지 약 1,25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대서양을 건너는 배에 실렸고, 살아서 아메리카에 내린 사람은 약 1,070만 명이었다. 그 대다수가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밭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무기와 직물을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설탕과 럼을 유럽으로 나르는 삼각무역의 한가운데에 사탕수수가 있었다.
설탕 식민지는 사람을 늘리지 못했다. 오히려 줄였다. 계속 새로 사 오지 않으면 인구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 — 그 자체가 이 체제의 잔혹함을 말해준다.
그 배 안의 몇 주는 그 자체로 지옥이었다. 사슬에 묶인 채 겹겹이 눕혀진 사람들은 질병과 탈수, 폭력 속에서 수십만 명이 대양에 버려졌다. 살아남아 섬에 닿은 사람들을 기다린 것은 조를 짜서 밭을 훑는 집단노동과, 끓는 시럽이 튀는 제당소의 밤샘 교대였다. 수확기의 제당소는 불을 꺼뜨릴 수 없어 밤낮으로 돌아갔고, 졸음에 손이 롤러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흔했다.
바베이도스 뉴턴 플랜테이션의 유골을 분석한 연구는 그곳 노예의 출생 시 기대수명을 스물아홉 살 안팎으로 추정한다. 고된 노동, 열대의 전염병, 만성적 영양 부족이 겹친 결과다. 플랜테이션은 사람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죽여 없앤 자리에 또 사람을 실어 오도록 설계된 기계였다.

노동계급의 각성제가 되기까지
그렇게 짜낸 단맛은 어디로 갔을까. 놀랍게도 상당 부분이 영국 노동자의 찻잔 속으로 흘러들었다. 홍차에 설탕을 타는 습관은 18세기를 거치며 위에서 아래로, 사치에서 필수로 미끄러졌다. 설탕을 듬뿍 넣은 뜨거운 차 한 잔은 값싼 열량과 카페인, 그리고 온기를 동시에 주었다. 빵과 차로 끼니를 때우는 공장 노동자에게 그것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연료였다.
민츠는 설탕과 차와 럼 같은 것들을 "노동계급의 마약 식품", 나아가 "프롤레타리아의 허기 살해자"라 불렀다. 배를 채워주지는 않으면서 허기의 감각만 잠재우고, 지친 몸에 잠깐의 각성을 주는 물질. 여기엔 냉정한 계산도 있었다. 공장주들은 차 마시는 짧은 휴식이 노동자를 각성시키고, 물을 끓이는 과정이 수인성 질병을 줄인다는 점을 반겼다. 잼을 바른 빵과 단 홍차는 조리할 시간도 연료도 없는 가정의 실용적 한 끼였다. 남편이 고기를 먹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빵과 설탕 든 차로 버티는 풍경도 드물지 않았다.
영국의 1인당 설탕 소비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폭발적으로 늘어, 1900년경에는 설탕이 잉글랜드 식단 열량의 약 5분의 1을 대고 있었다.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뒤집히는 이 과정은 자연스러운 진보가 아니라, 값싼 노예노동과 새 대중시장이 맞물려 빚어낸 결과였다. 단맛이 "민주화"되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그 민주화의 대가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치렀으니까.

당밀에 붙은 불씨
단맛의 정치는 대서양 건너 식민지에서도 불을 댕겼다. 흔히 1764년 설탕법을 두고 "영국이 설탕에 세금을 올려 식민지를 자극했다"고 요약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설탕법은 1733년 당밀법이 매기던 갤런당 6펜스의 관세를 오히려 3펜스로 절반 내렸다. 대신 조항의 절반 이상을 집행에 쏟아부었다. 세관원의 근무를 강제하고, 선장에게 화물의 합법성을 증명하는 서류와 보증금을 요구하고, 밀수 혐의자를 우호적인 지역 배심원이 아니라 핼리팩스의 해사법원에서 재판받게 했다.
뉴잉글랜드 경제의 기둥은 카리브해산 값싼 당밀로 럼을 증류하는 일이었다. 관세율이 낮아졌어도, 이제는 정말로 걷겠다는 것 — 그리고 그 돈이 식민지의 동의 없이 본국 금고로 들어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1764년 여름 보스턴 상인들은 영국 사치품 불매로 맞섰고, 새뮤얼 애덤스와 제임스 오티스는 대표 없는 과세를 자유민을 "공납 노예"로 전락시키는 짓이라 성토했다.
카리브해에서 진짜 노예가 사탕수수를 짜는 동안, 식민지의 백인 상인들은 스스로를 노예에 빗대며 분노했다. 설탕은 은유와 실물, 두 층위에서 동시에 정치를 움직였다.
이 불씨는 이듬해 인지세법을 거치며 더 크게 번졌고, 결국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로 독립혁명의 언어가 되었다. 단맛의 값을 둘러싼 다툼이 한 제국의 균열로 이어진 셈이다.
이윤은 정말 산업혁명을 굴렸나
여기서 한 걸음 신중해야 한다. 트리니다드의 역사가 에릭 윌리엄스는 1944년 『자본주의와 노예제』에서, 노예무역과 플랜테이션의 이윤이 영국 산업혁명의 종잣돈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강렬한 논지였지만, 이후 경제사가들의 검증을 그대로 통과하지는 못했다. 스탠리 엥거먼의 계산에 따르면 노예무역 이윤이 영국 자본 형성에서 차지한 비중은 대략 2.4~10.8퍼센트, GDP 기여는 0.5퍼센트 안팎에 그쳤다. 설탕 이윤이 산업혁명을 곧장 "굴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최근 연구들은 다른 각도에서 노예경제의 무게를 되살린다. 이윤의 직접 이전이라는 좁은 계산 대신, 플랜테이션이 창출한 거대한 수요, 그것을 굴린 신용과 보험, 조선과 해운, 대서양 상품시장 전체가 영국 경제에 어떻게 짜여 들어갔는지를 본다. 노예무역 한 항해의 장부만 떼어 보면 작아 보여도, 그 무역이 떠받친 산업의 그물망은 훨씬 넓었다는 관점이다. 확실한 사실은 리버풀과 브리스틀, 글래스고가 이 무역으로 살졌고 "설탕 귀족"의 대저택들이 그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가 하나 남는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을, 1833년 노예제 자체를 폐지한 뒤, 1846년에는 설탕 특혜관세마저 없앴다. 도덕적 각성과 자유무역이 나란히 도착한 이 타이밍이야말로, "진보의 서사"가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오늘의 단맛, 그리고 오래된 알리바이
지금 우리는 설탕을 병으로 이야기한다. 비만과 대사질환의 주범, 심지어 "설탕은 마약과 같다"는 말까지 흔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걷어낼 통념이 있다. 흔히 설탕이 코카인처럼 뇌를 중독시킨다고들 하지만, 사실 인간 대상 연구에서 그 근거는 빈약하다. 설탕에 마약 비슷한 폭식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주로 쥐에게 먹이를 끊었다 줬다 하는 간헐적 조건에서였고, 실제 식탁에서 통제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설탕 단독이 아니라 정교하게 배합된 설탕과 지방, 즉 초가공식품 쪽이다.
'설탕은 마약'이라는 프레임은 분석적으로는 허술해도 수사적으로는 편리하다. 문제의 무게를 식품 산업의 설계에서 개인의 의지박약으로 슬쩍 옮겨놓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16티스푼가량의 첨가당을 먹는데, 권고치는 12티스푼이고, 초가공식품은 이미 평균 섭취 열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400년 전 플랜테이션이 대중시장을 겨냥해 단맛을 쏟아냈듯, 지금은 식품 기업이 그 갈망을 겨냥해 값싼 열량을 설계한다.
구조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한때는 제국이 노예노동으로 원가를 짓눌러 단맛을 대중에게 쏟아부었고, 지금은 산업이 옥수수 시럽과 식품공학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값싼 열량이 흘러넘치는 곳에는 언제나 그것을 값싸게 만든 누군가의 노동과 대가가 감춰져 있다. 달라진 것은 그 대가가 이제 우리 눈에 덜 보인다는 점뿐인지도 모른다.
단맛을 향한 인류의 갈망은 죄가 아니다. 다만 그 갈망이 무엇을 굴려왔는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예선과 삼각무역, 세금과 혁명, 그리고 오늘의 비만까지. 다음에 커피에 시럽을 한 펌프 더 넣을 때, 잠깐 물어봐도 좋겠다. 이 값싼 달콤함의 진짜 가격은 누가, 언제, 어디서 치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