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2.2026 / --:-- KST
[경제·사회]2026-09-2210분 읽기

목숨값 —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것에 매일 값을 매기는 법

1983년, 목숨 하나를 몇십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로 고쳐 계산하자 백악관이 돌려보냈던 산업안전 규제가 확정됐다

미국 교통부는 2025년 기준 분석에 사망 한 건당 1,420만 달러를 넣는다. 이 숫자는 누구의 목숨값도 아니다. 사람들이 작은 위험을 줄이려고 얼마를 내는지에서 거꾸로 계산한 교환 비율이다. 숫자가 규제를 살린 날과 막은 날, 그리고 노인을 37퍼센트 싸게 친 날을 따라가면 질문이 바뀐다. 값을 매기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지갑으로 매기느냐다.

1991년, 미국 연방 제5순회항소법원의 판사 세 명이 판결문에 나눗셈을 적었다. 환경보호청(EPA)은 석면으로 만든 수도관을 금지하려 했다. 청의 계산으로는 13년 동안 세 명쯤이 목숨을 건진다. 대신 대체 자재로 바꾸는 데 1억 2,800만~2억 2,700만 달러가 든다. 판사들은 이 둘을 나눴다. 한 명을 살리는 데 4,300만~7,600만 달러. 석면 지붕널은 더했다. 0.32명을 살리는 데 2,300만~3,400만 달러였다. 법원은 석면 금지 규제를 대부분 무효로 했다. 법정에서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값을 매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값을 안 매기면 생기는 일

생명에 값을 매기는 건 비인간적이고, 그래서 정부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정부가 예산을 쓰는 순간 값은 이미 매겨진다. 가드레일에 쓸 돈을 암 검진에 쓸 수는 없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할지 정하는 일이 곧 가격표다. 차이는 그 가격표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뿐이다.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어떤 꼴인지 보여준 연구가 있다. 1995년 미국의 보건정책 연구진은 미국에서 사람을 살리려고 쓰는 조치 587개의 비용을 모아 같은 기준으로 다시 계산했다. 생명을 1년 늘리는 데 드는 돈이다. 쓴 돈보다 아낀 돈이 더 많은 조치가 있는가 하면, 1년에 100억 달러가 넘게 드는 조치도 있었다. 중간값만 봐도 의료는 1만 9천 달러, 사고 예방은 4만 8천 달러, 독성물질 규제는 280만 달러였다. 의료와 독성물질 사이만 150배 가까이 벌어진다. 같은 돈을 옮기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 숫자를 정하지 않았다. 부처마다 제각각 결정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값을 매기지 않는다고 목숨이 존중되는 게 아니다. 값이 아무 데서나 제멋대로 매겨질 뿐이다.

dkdk가 긴 선반에 늘어선 상자들의 가격표를 하나씩 뒤집어 보며 놀라는데, 어떤 표는 아주 짧고 어떤 표는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그림 1값을 매기지 않아도 값은 매겨진다. 사람을 살리는 조치 587개의 비용은 서로 수천 배씩 달랐다.

아무의 목숨도 아닌 1,420만 달러

미국 교통부는 이 혼란을 숫자 하나로 정리한다. 통계적 생명가치, 줄여서 VSL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하는 분석이라면 1,420만 달러를 쓴다. 2012년에는 910만 달러였다. 해마다 물가와 소득 변화를 반영해 올린다. 보건복지부의 중심값은 1,360만 달러(2024년 달러 기준)다. 한편 환경보호청 값은 2022년 달러로 1,070만 달러다. 이 값은 1974~1991년에 나온 연구 26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 연구로 다시 계산한 적 없이 달러 가치만 맞춰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누군가의 목숨값이 아니다. 계산은 이렇다. 1만 명이 각자 사망 위험을 1만 분의 1씩 줄이려고 1,000달러씩 낼 생각이 있다고 하자. 1만 명 중 한 명이 덜 죽는 셈이니, 사람들은 통계상 한 명을 살리는 데 모두 합쳐 1,000만 달러를 쓰겠다는 뜻이 된다. 경제학자들은 이 '낼 생각이 있는 돈', 곧 지불의사를 실제 행동에서 읽어낸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한 일에 붙는 웃돈이다. 사망 위험이 조금 더 높은 일자리가 임금을 얼마나 더 주는지 보면, 사람들이 위험과 돈을 어떤 비율로 맞바꾸는지 드러난다. 설문으로 직접 묻는 방법도 쓴다. 어느 쪽이든 재는 것은 한 사람의 값이 아니라 교환 비율이다. 그래서 '통계적'이라는 말이 붙는다. 이 숫자로 살리는 사람은 이름이 없다. 내년 어느 교차로에서 사고를 피할 누군가일 뿐이다. 환경보호청도 분명히 적어둔다. 우리는 개인의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고. 매기는 건 작은 위험을 줄이는 데 대한 값이다.

dkdk가 작은 점이 촘촘히 찍힌 커다란 판 앞에 서서 동전 하나를 들고 있고, 판의 수많은 점 가운데 딱 하나에만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그림 2통계적 생명가치는 특정한 누군가의 목숨값이 아니라, 작은 위험을 줄이는 데 사람들이 내려는 돈에서 역산한 교환 비율이다.

숫자가 규제를 살린 날

이 숫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목숨값이 더 쌌다. 1982년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작업장 유해 화학물질에 경고 표시를 붙이게 하는 규제를 내놨다. 당시 계산법은 '사망 비용'이었다. 죽은 사람이 벌었을 소득과 치료비를 더하는 식이라 한 명당 몇십만 달러에 그쳤다. 그러니 비용이 편익보다 컸고,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규제를 돌려보냈다. 다툼을 정리하는 일을 맡은 경제학자 킵 비스쿠시는 소득 대신 임금 웃돈에서 뽑은 300만 달러를 넣었다. 편익이 열 배로 뛰었고, 규제는 1983년 11월 최종 확정됐다. 그 뒤로 사망 비용 방식은 연방 규제 분석에서 밀려났고, 지불의사에서 뽑은 VSL이 표준이 됐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목숨에 값을 매기자 규제는 더 엄격해졌다.

dkdk가 계산서의 작은 숫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큰 숫자를 새로 적는데, 옆에 놓인 양팔 저울이 그 순간 반대쪽으로 기운다
그림 3벌어들일 소득으로만 셈하던 사망 비용을 통계적 생명가치로 바꾸자 편익이 열 배로 뛰었고, 막혀 있던 규제가 통과됐다.

자동차도 그렇다. 2007년 교통부 산하 도로교통안전청은 승용차와 소형 트럭 전부에 차체자세제어장치를 달게 했다. 연간 비용 9억 8,500만 달러. 대신 해마다 1,547~2,534명이 산다. 부상까지 사망으로 환산해 합쳐도, 한 명분을 살리는 데 드는 돈은 18만~33만 달러였다. 당시 교통부가 쓰던 생명가치보다 한참 낮았다. 순편익은 한 해 최대 114억 달러로 추산됐다. 숫자가 규제의 가장 강한 논거였다.

숫자가 규제를 막은 날

다시 석면으로 가 보자. 1989년 환경보호청의 규칙은 석면 제품 대부분을 단계적으로 없애는 전면 금지였다. 법원이 문제 삼은 건 값을 매긴 것 자체가 아니었다. 환경보호청이 편익을 2000년까지만 셌고, 그 뒤에 살릴 목숨은 '계량하지 않은 편익'이라며 따로 빼 두었다는 점이다. 석면병은 수십 년 뒤에 나타나는데도 그랬다. 판결문의 한 대목은 비꼬는 투가 역력하다.

dkdk가 바닥까지 늘어진 긴 계산서를 펼쳐 보는데, 계산서가 중간에서 가위로 싹둑 잘려 있어 잘린 조각을 집어 들고 들여다본다
그림 4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값을 매긴 일이 아니라, 편익을 일정 시점까지만 세고 그 뒤의 목숨은 빼 버린 계산이었다.

환경보호청은 의회가 경제적 영향을 고려하라고 요구했을 때, 13년 동안 약 일곱 명을 살리려고 2억~3억 달러를 쓰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이 법원이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 결과는 길게 남았다. 의회는 2016년 독성물질관리법을 고쳤다. 화학물질이 위험한지 판정하는 단계에서는 비용을 따지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숫자가 틀려서가 아니라, 세지 못한 목숨이 계속 계산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환경보호청은 2024년 3월에야 석면 사용을 다시 금지했다. 청은 미국에서 해마다 4만 명 넘는 죽음이 석면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33년이 걸렸다. 숫자는 규제를 살리기도 하고 막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될지는 무엇을 세고 무엇을 빼느냐에 달렸다.

37퍼센트 할인

그러면 누구의 지불의사를 넣을 것인가. 2003년 환경보호청은 대기오염 법안의 편익을 계산하면서 70세 넘은 사람의 생명가치를 230만 달러로 잡았다. 젊은 사람의 370만 달러보다 37퍼센트 낮았다. 남은 수명이 짧으니 덜 쳐도 된다는 논리였다. 여러 도시에서 노인들이 '노인 할인, 37퍼센트 오프'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공청회에 나왔다. 그해 5월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청장은 손을 들었다.

그 분석 방식은 폐기했습니다. 결론은, 환경보호청이 공포하는 어떤 규제에도 나이를 반영한 분석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논리의 방향이었다. 노인이 위험을 줄이는 데 실제로 덜 낼 생각이 있는지는 연구마다 결과가 엇갈린다. 남은 해가 적을수록 그 해를 더 아낄 수도 있다. 할인은 노인의 지불의사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분석가의 가정에서 나왔다. 넉 달 뒤 나온 예산관리국의 규제분석 지침(Circular A-4)에는 나이와 VSL의 관계에 대한 증거가 엇갈리니 나이 조정을 하지 말라는 문장이 들어갔다. 남은 수명으로 따지는 방식을 쓸 때도 노인에게는 1년의 값을 더 높게 치라고 적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2023년 개정판을 폐기하고 되살린 것이 바로 이 2003년판이다.

dkdk가 가격표에 할인 스티커를 붙이려다 손을 멈추고, 스티커를 다시 떼어 손가락 끝에 들고 찡그린 얼굴로 본다
그림 5노인의 생명가치를 37퍼센트 낮춘 계산은 거센 반발 끝에 철회됐다. 누구의 지불의사를 넣느냐가 곧 윤리 문제다.

소득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부자는 같은 위험을 줄이는 데 더 많이 낼 수 있다. 이걸 그대로 따르면 부자 동네의 공기를 맑게 하는 규제가 가난한 동네의 규제보다 편익이 크게 나온다. 그래서 미국 기관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같은 숫자를 쓴다. 하지만 국경을 넘으면 사정이 다르다. 비스쿠시와 클레이턴 매스터먼은 2017년 논문에서 나라별 VSL을 소득으로 환산했다. 저소득국 평균은 10만 7천 달러, 고소득국은 640만 달러였다. 189개국의 범위는 4만 5천 달러에서 1,830만 달러까지 벌어진다. 가난한 사람은 위험을 줄이는 데 낼 돈이 적다. 이건 사실이다. 그 사실을 정책에 그대로 옮기느냐는 경제학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이 그 선택을 정면으로 겪었다. 법은 희생자마다 소득에 맞춰 보상액을 달리 계산하게 했다. 사망자 2,880명의 유족에게 돌아간 평균은 200만 달러를 넘었지만, 가족마다 액수는 크게 달랐다. 기금을 맡았던 케네스 파인버그는 최종 보고서에서, 유족들이 내 가족의 목숨이 남보다 깎였다고 느꼈다고 적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모두에게 같은 액수를 주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그 방식에도 약점이 있다는 걸 그도 알았다. 같은 돈이라도 주식중개인의 가족과 웨이터나 경찰관의 가족에게는 무게가 전혀 다르다. 그래도 그는 거친 정의가 낫다고 봤다. 무엇을 셀지는 한국에서도 바뀌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23년 도로교통사고비용을 54조 595억 원으로 추산하면서 계산법을 바꿨다. 사상자 본인의 고통만 세던 것을 가족의 고통까지 세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비용이 한 해 만에 23.5퍼센트 늘었다.

값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

생명가치는 정답이 아니다. 기관마다 다르고, 옛 연구에 기대기도 하고, 누구의 지갑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흔들린다. 그래도 숫자가 있으면 따질 수 있다. 노인을 37퍼센트 싸게 쳤다는 사실은 숫자가 드러나 있었기에 스티커가 되고 철회가 됐다. 587개 조치에 흩어진 가격표는 아무도 정한 적이 없어서 아무도 따지지 못했다. 석면 판결도 마찬가지다. 편익을 13년으로 자른 선택이 판결문에 적혀 있었기에, 25년 뒤 의회가 그 선택을 고칠 수 있었다.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은 계산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계산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낼 뿐이다. 물어야 할 것은 값을 매기느냐가 아니다. 그 값이 누구의 지갑에서 나왔고, 누구에게 똑같이 적용되느냐다. 숫자를 치우면 그 질문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값은 매기되, 숨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