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는 어떻게 재게 되었나
1884년 메리 링컨의 요리책에서 한 스푼은 이미 수북한 것이었다 — 패니 파머가 바꾼 건 도구가 아니라 기본값이었다
옛 요리책이 "적당히"라고 쓴 건 부정확해서가 아니다. 그건 이미 요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쓴 비망록이었다. 레시피가 컵과 스푼으로 재기 시작한 것은 요리가 정밀해져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계량은 측정의 기술이기 전에 신뢰를 표준화하는 기술이었다.
1390년 무렵, 잉글랜드 왕 리처드 2세의 수석 요리사들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은 두루마리에 버섯 요리 하나가 실렸다. 전문은 이렇다. 버섯을 가져다 깨끗이 다듬어 네모나게 썬다. 부추를 가져다 잘게 썰어 좋은 육수에 넣고 끓인다. 사프란으로 색을 내고 매운 향신료 가루를 넣는다. 끝이다. 버섯이 몇 개인지, 육수가 얼마인지, 얼마나 끓이는지 적혀 있지 않다. 불 세기도 없고 몇 인분인지도 없다. 같은 두루마리의 다른 항목들에는 "좋은 분량의 식초", "많은 분량의 양파" 같은 말이 계속 나온다. 우리는 이런 글을 보면 옛사람들이 대충 요리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거꾸로 읽은 것이다. 이 글은 요리를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려고 쓴 게 아니었다. 평생 그 요리를 해온 사람이 잊지 않으려고 남긴 메모였다.
레시피는 원래 요리책이 아니었다
『포름 오브 큐리』라고 불리는 이 두루마리는 중세 영어로 남은 가장 큰 요리 기록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건 생산 방식이다. 왕실 수석 요리사들은 아마 글을 읽지 못했을 것이고, 뒤에 앉은 서기가 받아 적었다. 요리는 몸에 있었고 종이에 남은 건 그 몸의 색인일 뿐이었다.
Take Funges and pare hem clere and dyce hem. take leke and shred hym small and do hym to seeþ in gode broth. colour it with safron and do þer inne powdour fort.
분량이 없는 이유는 없어도 됐기 때문이다. 냄비 크기는 그 집 부엌이 정한다. 버섯의 양은 그날 시장이 정한다. 얼마나 끓일지는 눈과 코가 정한다. 이 셋을 다 아는 사람에게 숫자는 군더더기다.
더 결정적인 건 장르 자체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영국 가정에서 손으로 써서 물려주던 '리시트 북(receipt book)'을 열어 보면, 파이 굽는 법 옆에 열병에 쓰는 물약 처방이 있고, 그 밑에 손 트는 데 바르는 연고와 잉크 만드는 법, 가축에게 먹이는 약이 나란히 있다. 영어에서 receipt는 요리법과 약 처방을 동시에 뜻했고, 둘은 구분되지 않았다. 현재 도서관에 남은 17세기 영국 여성의 리시트 북만 200권이 넘는다. 이건 요리책이 아니다. 한 집안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 전부를 담은 노트다.
그러니까 옛 레시피가 부정확했다는 말은 틀렸다. 애초에 정확할 이유가 없는 문서였다.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같거나, 같은 부엌에서 나란히 일해본 사이였다.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에서는 설명이 생기지 않는다.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그 관계가 깨진 자리에서 우리가 아는 레시피가 태어난다. 1845년 일라이자 액턴은 『현대 요리법』 서문에 이렇게 썼다. 수많은 요리책을 꼼꼼히 읽어봤지만,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온전히 맞는 책은 한 권도 만나지 못했다고. 이 기술의 첫걸음부터 짚어주는 책이 없다고.
액턴이 내놓은 해법이 지금 우리가 매일 보는 그 형식이다. 그는 자기 책의 "새로운 특징" 가운데 으뜸으로 조리법 끝에 붙인 요약을 꼽았다.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씩, 각각의 정확한 비율과 전체 소요 시간까지 적어두는 것. 실제 책을 펴 보면 세몰리나 수프 설명이 끝난 자리에 이렇게 한 줄이 붙어 있다. 수프 3쿼트, 세몰리나 6온스, 거의 또는 꼭 25분. 재료 목록이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형식은 아직 굳지 않았다.
액턴이 재료 목록을 발명했다는 말은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요리책 역사에는 잘못된 '최초'가 널려 있다. 확실한 건 액턴 본인이 이것을 자기 발명으로 내걸고 팔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왜 그랬는지도 본인이 적어놓았다. 당근 수프 항목 끝에 붙은 짧은 덧말이 이 글의 논지를 한 문장으로 말해준다. 경험 많고 관찰력 있는 요리사라면 저울과 계량도구에 기대지 않고도 적당한 비율을 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규칙을 따르는 편이 낫다.
요리가 정밀해진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바뀌었다.

패니 파머가 발명하지 않은 것
미국 쪽 이야기는 보통 이렇게 요약된다. 1896년 패니 파머가 『보스턴 요리학교 요리책』을 내면서 처음으로 정확한 계량을 도입했다고.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파머보다 열두 해 앞선 1884년, 보스턴 요리학교에서 파머를 가르쳤던 메리 링컨이 이미 자기 요리책에 '계량하기'라는 절을 두고 있었다. 컵과 스푼으로 재는 법, 밀가루는 체 친 뒤에 잴 것, 컵은 가득 채우고 칼로 윗면을 밀어 고를 것까지 다 적혀 있다. 계량컵은 파머가 만든 물건이 아니다. 파머가 학생이던 시절 교실에 이미 있었다.
그런데 링컨의 그 절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좋은 요리사는 아무것도 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그들도 잰다. 판단과 경험으로 잰다. 그리고 당신이 그 두 가지를 넉넉히 갖추기 전까지는, 스푼과 컵이나 저울을 쓰라.
1884년의 저자가 자기 책의 독자를 어떻게 규정했는지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 계량은 요리를 잘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아직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대체물이다. 다만 링컨의 기본값은 아직 헐거웠다. 그의 책에서 한 스푼은 따로 말이 없으면 수북이 담은 것을 뜻했고, 컵은 "반 파인트 들어가는 흔한 부엌 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겨자 가루를 통에서 아무렇게나 한 스푼 뜬 것이 체 쳐서 잰 세 스푼과 같더라는 관찰을 적어놓았다.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규칙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파머가 한 일이 바로 그 지점이다. 그는 예외를 없앴다. 1896년 책의 '계량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려면 정확한 계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못을 박는다. 한 컵은 평평하게 깎아 잰다. 한 큰술도, 한 작은술도 평평하게 깎아 잰다. 컵을 흔들지 말라는 주의까지 붙였다. 수북이냐 평평하냐를 저자의 취향에서 책의 규칙으로 옮긴 것, 그게 파머의 발명이다.

여기서 자주 빠지는 대목이 있다. 출판사 리틀브라운은 요리책으로 손해를 볼까 봐 초판 3,000부 인쇄비를 파머에게 직접 부담시켰다. 대신 파머는 판권을 자기가 가졌다. 책은 팔렸고, 그가 죽을 때까지 36만 부가 나갔으며, 판권은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감동적인 성공담이어서가 아니다. 미국 요리의 계량 표준을 만든 그 책이 저자가 자기 돈을 걸고 소유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상품에는 보증이 필요하다. 집안에서 물려주던 리시트 북은 틀려도 그만이었다. 옆에 물어볼 사람이 있었으니까. 돈을 받고 파는 책은 다르다. 낯선 부엌에서, 물어볼 사람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평평하게 깎은 한 컵은 그 약속을 실행 가능한 명령으로 바꾼 장치였다.
때가 맞았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가사를 과학으로 다시 세우자는 가정학 운동이 세를 얻고 있었다. 엘런 리처즈 같은 이들이 공장의 표준화와 동작 연구를 부엌에 들여오자고 주장했다. 동시에 중산층 가정에서 하인이 빠르게 사라졌다. 요리를 아는 사람이 부엌에 상주하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요리를 배운 적 없는 안주인이 혼자 저녁을 차려야 했고, 그에게 필요한 건 요리 감각이 아니라 따라 하면 되는 절차였다.
컵은 왜 미국에만 남았나
유럽의 제빵과 전문 주방은 그램으로 간다. 미국은 컵으로 간다. 어느 쪽이 더 발전했다는 식의 설명은 둘 다 틀렸다. 답은 부엌 살림살이의 가격에 있다.

1913년 프록터앤드갬블이 신제품 쇼트닝을 팔려고 뿌린 요리책 『크리스코 이야기』에 이 논리가 그대로 적혀 있다. 저울과 분동도 가능하면 갖추는 게 좋다고 말한 다음, 곧바로 덧붙인다. 계량컵은 값이 워낙 싸서 없을 이유가 없다고. 그리고 선언한다. 이 책의 모든 계량은 평평하게 깎은 것이라고. 저울은 "가능하면", 컵은 "반드시". 19세기 말 저울은 비쌌고 정확하지도 않았다. 양철이나 알루미늄으로 찍어낸 컵은 누구나 살 수 있었다.
같은 책에 더 중요한 문장이 있다. 반 파인트들이 표준 계량컵을 반드시 쓸 것, 커피잔이나 찻잔은 크기가 제각각이라 올바른 비율을 얻을 수 없다는 경고다. 링컨이 1884년에 "흔한 부엌 컵"이라고 부른 것이 29년 만에 따로 사야 하는 전용 도구가 됐다. 이 전환을 실어 나른 건 요리학교가 아니라 식품회사의 무료 판촉 요리책이었다. 회사는 자기 제품을 쓰는 레시피를 뿌리면서 덤으로 계량 표준까지 전국에 깔았다.
정확해 보이는 것과 정확한 것
그런데 이 승리에는 지독한 반전이 있다. 킹아서베이킹은 밀가루 한 컵을 체 쳐 살살 담아 깎으면 약 120그램, 꾹꾹 눌러 담기면 160그램까지 올라간다고 말한다.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은 수십 명에게 한 컵씩 재게 해 평균을 내어 1컵을 5온스, 약 142그램으로 정했고, 손 힘에 따라 최대 20퍼센트까지 차이가 난다고 적었다.
겹쳐 읽어보라.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두 제빵 기관이 같은 한 컵을 120그램과 142그램으로 다르게 잡고 있다. 그 사이 22그램은 어떤 반죽에서는 성패를 가른다. 정확한 계량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도입된 그 도구가, 정작 재는 양은 3분의 1 가까이 흔들린다.

그러므로 컵이 표준화한 것은 밀가루의 양이 아니다. 표준화된 것은 지시에 대한 신뢰였다. "평평하게 깎은 한 컵"이라는 문장은 물리적 정밀함을 주는 대신, 이 책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확신을 준다. 계량은 측정 기술이기 전에 권위의 기술이었다. 레시피가 판단을 요구하지 않을수록 저자의 권위는 커지고, 책은 더 멀리 팔린다.
다시 길어진 레시피, 다시 사라진 숫자
인터넷 레시피가 왜 그렇게 긴 신변잡기로 시작하는지에 대한 흔한 답은 검색 최적화와 광고 지면이다. 맞는 말이지만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저작권이다.
미국 저작권청 회람 33호는 재료를 나열한 것이나 단순한 지시는 저작권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1996년 연방 제7항소법원은 요구르트 요리책을 둘러싼 분쟁에서 이 원칙을 확인했다. 재료를 밝혀 적은 것은 사실의 진술이며 각 목록에는 표현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요리 절차는 '방법·과정·시스템'에 해당해 보호에서 빠진다. 액턴이 자기 발명이라고 자랑했고 파머가 표준으로 굳힌 그 재료 목록은, 법 앞에서 소유할 수 없는 사실 덩어리다. 레시피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그 둘레에 자기만 쓸 수 있는 문장을 둘러야 한다. 할머니 이야기와 여행 회상은 장식이 아니라 울타리다.
그 아래쪽에서는 조용히 다른 일이 벌어진다. 짧은 요리 영상에는 숫자가 거의 없다. 병을 기울여 이만큼 붓고, 손으로 집어 툭 뿌리고, 색이 이렇게 되면 끄라고 한다. 계량컵이 하던 일을 카메라가 대신한다. 보는 사람은 양을 읽는 게 아니라 동작을 본다. 이건 후퇴가 아니다. 문자로는 전할 수 없어서 숫자로 옮겼던 것을, 영상이 다시 몸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600년 전 서기가 버섯 요리를 받아 적으면서 분량을 생략했던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읽을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량은 그 앎이 부엌에서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려고 들어왔다. 이제 앎이 다른 경로로 돌아오고 있으니, 숫자는 다시 물러나는 중이다. 레시피는 요리하는 법을 적은 글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요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요리를 아는 사람의 권위를 건네는 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