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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역사]2026-09-0810분 읽기

개인이라는 발명 — 한 사람이 단위가 되기까지

한 사람이 단위가 되기까지

세금은 굴뚝에 매겨졌고, 형벌은 삼족으로 번졌고, 법정에 설 얼굴은 집마다 하나였다. 사람을 낱낱이 세는 기술은 진나라 장부가 영국 인구조사보다 훨씬 앞섰지만, 세어진 그 한 사람을 권리와 책임의 단위로 삼는 일은 훨씬 늦게 왔다. 호적과 주민등록, 연좌제 금지 조항이 도착하기까지의 시차를 따라가면, 개인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장부의 칸이 바뀌며 만들어진 결과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칸은 지금 데이터 앞에서 다시 흔들리고 있다.

어떤 장부에는 사람이 없다. 조선의 호적을 펼치면 이름이 줄지어 나오지만, 그 문서가 세려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호(戶)였다. 호적은 호역과 호세를 걷기 위한 행정 장부였고, 호주는 가부장이기 이전에 납세 의무자였다. 국가가 손을 뻗을 때 붙잡는 손잡이는 개인이 아니라 집이었다. 오늘 우리가 공기처럼 여기는 것 — 한 사람이 하나의 권리와 하나의 책임을 지고 하나의 번호로 세어진다는 것 — 은 인류가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가 아주 오래 걸려 만들어 낸 결과물이고, 지금도 완성되지 않았다.

진의 장부와 영국의 인구조사

먼저 흔한 오해 하나를 걷어내자. 개인을 낱낱이 세는 기술은 근대의 발명도, 서구의 발명도 아니다. 중국의 편호(編戶) 장부는 전국시대 상앙의 변법에서 싹터 기원전 221년 진의 통일 이후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시작점을 한 해로 못 박기는 어렵다. 제도는 대개 선포된 날이 아니라 스며든 기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그 장부가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적었고, 그렇게 적힌 사람에게서 세와 부역과 병역을 뽑아냈다는 사실이다. 장부에 오른다는 것은 곧 묶인다는 뜻이었다.

dkdk가 펼친 장부에 이름을 적자 그 글자에서 끈이 뻗어 나와 자기 발목에 감긴다
그림 1장부에 오른다는 것은 곧 묶인다는 뜻이었다

반면 잉글랜드가 가구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름을 처음 적어 넣은 인구조사는 1841년이었다. 성격이 다른 장부이긴 하다. 편호는 세와 병역을 위해 계속 갱신되는 행정 대장이었고, 인구조사는 십 년에 한 번 인구를 세는 통계 작업이었다. 그래도 사람 이름을 낱낱이 적었다는 점에서는 견줄 만하다. 미국은 1850년이 처음인데, 그것도 자유인에 한해서였다. 노예는 이름 없이 성별과 나이만, 소유주의 이름 아래 적혔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세어지되 사람으로 세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두 시계가 다른 속도로 돌았다는 얘기다. 사람을 세는 시계는 아주 일찍부터, 그것도 동아시아에서 먼저 돌기 시작했다. 늦게 돌기 시작한 쪽은 다른 시계다. 세어진 그 한 사람을 권리와 책임의 단위로 삼는 시계.

로마의 persona는 가면이었다

persona는 본래 배우가 쓰던 가면을 뜻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맡는 배역 — 가장, 채권자, 채무자.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걸치는 역할이 법의 관심사였다.

그래서 로마법에서 온전한 법적 능력을 지닌 자는 sui iuris, 곧 제 법 아래 선 자뿐이었고, 한 집에서 그는 보통 가장 한 명이었다. 나머지 식구는 alieni iuris, 남의 법 아래 있는 자였다. 이들은 소송을 걸 수도 당할 수도 없었고 혼인에도 가장의 승낙이 필요했다. 집 안에 열 사람이 살아도 법정에 설 얼굴은 하나였던 셈이다. 가면은 사람 수만큼 있지 않았다.

dkdk가 여러 사람이 산다는 표시가 있는 집 앞에 가면이 딱 하나만 걸려 있고, 그 가면을 든 채 법정 문 앞에 선다
그림 2가면은 사람 수만큼 있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로마인이 개인을 몰랐다고 말하면 과장이다. 그들은 사람의 개성과 내면을 충분히 알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다만 법이 셈에 넣는 최소 칸이 사람 하나가 아니었을 뿐이다. 안다는 것과 단위로 삼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 글이 쫓는 것은 앞이 아니라 뒤쪽, 그러니까 장부의 칸이 언제 사람 크기로 줄어들었는가다.

굴뚝에 매기는 세금, 열 집에 번지는 형벌

회계도 마찬가지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비한 카피타티오-유가티오는 경작지 단위와 인두 단위를 얽어 한 덩어리로 부과했고, 중세 유럽의 화덕세는 아예 굴뚝을 셌다. 비잔틴에서 9세기부터,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 14세기부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의 fouage는 마을에 총액을 던져 주고 내부 배분은 알아서 하라고 맡겼다. 오스만의 조사 장부에서 과세 단위는 하네(hane)였는데, 전시 부과금을 걷을 때 쓰인 아바르즈하네는 실제 집 여러 채를 묶어 만든 가상의 한 가구였다. 세금의 눈에 개인은 해상도 밖이었다.

형벌 쪽은 더 노골적이다. 상앙이 도입한 연대책임의 원리는 훗날 보갑제로 이어져, 청대에는 열 집이 갑, 열 갑이 보를 이루며 호구 조사와 치안을 함께 떠맡았다. 잉글랜드의 프랭크플레지도 구조가 같다. 성인 남성을 열 명 단위 조에 묶고, 한 명이 죄를 짓고 달아나면 남은 아홉이 벌금을 물었다. 크누트 시대에 정비되어 노르만 정복 이후 자리를 잡았고, 주장관은 일 년에 두 번 관할을 돌며 조에 빠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감시와 치안과 징수가 한 장치 안에 겹쳐 있었다. 조선에서는 『대명률』과 『경국대전』이 반역죄에 삼족을 멸하도록 규정했다.

세금도 형벌도 사람 하나를 겨냥하지 않았다. 겨냥한 것은 집이고 조였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물이 번지듯 옆으로 번졌다.

dkdk가 나란히 붙은 집 모형 중 하나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자 그 얼룩이 옆집들까지 번져 나간다
그림 3한 사람이 잘못하면 물이 번지듯 옆으로 번졌다

양심과 계약, 그리고 어긋나는 연표

전환의 계기로 흔히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종교개혁이다. 만인사제라는 주장은 사제를 거치지 않고 각자가 신 앞에 선다는 뜻으로 읽혔고, 양심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부의 양심이 추기경의 양심만큼 성경을 읽고 신에게 답할 수 있다면, 은총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중세적 배치는 근거를 잃는다. 다만 이 해석은 정설이 아니다. 루터가 말한 만인사제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회중이라는 공동체의 실재를 가리킨다는 반론이 신학사 안에 단단히 서 있다.

다른 하나는 계약이다. 헨리 메인은 1861년 『고대법』에서 진보하는 사회는 신분에서 계약으로 이동한다고 썼다.

개인이 가족을 대신해, 민법이 고려하는 단위 자리를 꾸준히 차지해 왔다.

문장은 선명하지만 이것은 증거가 아니라 하나의 주장이다. 이후 학자들은 메인의 도식이 지나치게 매끈하다고 반박해 왔다. 연표 자체도 합의된 적이 없다. 부르크하르트는 1860년에 개인의 발달을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두었고, 콜린 모리스는 1972년에 그것을 12세기, 정확히는 1050년에서 1200년 사이로 끌어내렸다. 두 세기 반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불일치는 자료의 결함이라기보다 질문의 성격 탓이다. 개인이라는 관념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문헌으로 다투지만, 개인이 언제 단위가 되었는지는 장부로 확인된다.

장부가 바뀌던 날들

근대국가는 인구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등록, 신분증, 통계, 지문.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인구조사와 등기부와 통계국과 분류 체계가 인구를 행정적 지식의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 사람은 나이, 성별, 직업, 언어, 종교, 출생지 같은 항목으로 나뉘어 정리되었다. 겉보기에 중립적인 칸들이었지만 어떤 칸에 들어가느냐가 곧 처우를 갈랐다. 여권은 이 흐름의 한 정점이다. 몸 하나를 이름과 국적과 인상착의와 서명, 나중에는 사진에 붙들어 매어, 움직이려면 서류가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을 등록한다고 곧바로 개인이 단위가 되지는 않는다. 메이지 일본이 1871년과 1872년에 걸쳐 호적을 전국에 깔았을 때, 기재 대상은 분명 개인이었지만 개인은 반드시 호에 매달려 적혔고, 그 행정 단위는 1898년 민법의 이에(家)로 굳어 법적 실체가 되었다.

한국의 궤적은 이 이중성을 더 길게 보여 준다. 갑오개혁 이후 1896년 호구조사규칙이 근대적 조사 체계를 들여왔고, 1909년 민적법과 1922년 조선호적령을 거치며 호주가 가족의 신분을 통제하는 강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이 구조는 1958년 민법에 호주제로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쪽에서 개인을 겨냥한 장치가 들어선다. 1962년 주민등록법이 제정되고, 1968년까지 1500만여 명에게 고유 번호가 적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그때 번호는 지금보다 한 자리 적은 열두 자리였고, 열세 자리가 된 것은 1975년 개정에서다. 호를 단위로 삼는 장부와 개인을 단위로 삼는 장부가 사십 년 넘게 나란히 굴러간 셈이다. 호주제 자체도 1989년에 호주의 권한을 깎는 방향으로 한 차례 손질되었지만 폐지까지는 다시 십수 년이 걸렸다. 앞의 장부는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로 접혔고, 2008년 1월 1일부터 가족관계등록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호를 먼저 세우고 사람을 매다는 대신, 사람을 세우고 관계를 적는 방식이다.

dkdk가 큰 상자 하나에 매달려 있던 이름표들을 풀어내, 이름표를 하나씩 따로 세우고 그 사이를 가는 실로 잇는다
그림 4호를 먼저 세우고 사람을 매다는 대신, 사람을 세우고 관계를 적는 방식이다

책임의 단위도 비슷한 시차를 겪었다. 연좌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문서상 폐지되었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사상범과 월북자의 친족에게 불이익을 주는 관행으로 오래 살아남았다. 헌법이 이를 명문으로 금지한 것은 1980년이고, 내무부가 폐지 지침을 내린 것은 1981년 3월이다. 현행 헌법 제13조 3항은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한 문장이 이렇게까지 늦게 도착한다. 개인이 단위가 되는 날은 법전에 문장이 실린 날이 아니라, 창구의 장부에서 칸이 바뀐 날이었다.

다시 쪼개지는 단위

그런데 겨우 완성된 이 단위가 지금 다시 흔들린다. 들뢰즈는 1990년에 통제사회를 이야기하며, 권력이 개인이라는 덩어리가 아니라 조각과 표본과 데이터를 상대로 작동한다고 썼다. 그가 쓴 dividual이라는 말은 나뉘지 않는다는 뜻의 개인을 비틀어 만든 것이다. 오늘의 데이터는 나를 한 사람보다 작게 쪼갠다. 검색어 하나, 머문 시간 몇 초, 스크롤 깊이. 그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프로필로 묶는다. 광고 세그먼트, 신용 점수, 코호트. 기관마다 다른 나의 사본이 굴러다니고, 어떤 사본은 나보다 나를 잘 안다고 주장한다. 진의 편호가 이름과 나이 두 칸이었다면, 지금의 장부는 칸이 수천 개고 나는 그중 어느 칸에 무엇이 적혔는지 대체로 모른다.

dkdk가 자기 모습이 수천 개의 작은 서랍으로 쪼개져 벽을 가득 채웠는데, 그 앞에서 어느 서랍을 열어야 할지 몰라 손만 들고 있다
그림 5지금의 장부는 칸이 수천 개고 나는 그중 어느 칸에 무엇이 적혔는지 대체로 모른다

이상한 것은 이 재편이 책임 쪽 장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어지는 단위는 조각으로 흩어졌는데, 약관에 동의하는 것도, 유출된 번호를 감당하는 것도 여전히 한 사람이다. 우리는 세는 방식과 책임지는 방식이 다시 어긋난 시대를 살고 있다. 호와 개인이 나란히 굴러가던 사십 년처럼.

그렇다면 다음 장부는 무엇을 하나로 셀까. 지금의 한 사람은, 조선의 호처럼 언젠가 낡은 단위로 불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