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의 발명 — 담배는 오래됐지만 이 물건은 새것이다
1881년의 기계 한 대와 잎을 말리는 방식이 바꾼 것, 그리고 40년 뒤에 도착한 청구서
1900년 미국 성인이 1년에 피운 궐련은 쉰 개 남짓이었다. 1963년엔 4,345개가 된다. 인류가 갑자기 담배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사이 담배가 다른 물건이 되었다. 자동 제조기와 화력 건조와 암모니아 처리가 '폐 속까지 들이마실 수 있는 담배'를 발명했고, 폐암 유행은 그 발명을 수십 년 뒤따라왔다.
1900년 미국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피운 궐련은 쉰 개 남짓이었다. 자료에 따라 서른다섯 개로도, 쉰네 개로도 집계된다. 어느 쪽이든 한 달에 서너 개비다. 그로부터 예순세 해 뒤인 1963년, 같은 통계의 숫자는 4,345개가 된다. 하루 열두 개비. 인류가 갑자기 담배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사이에 담배가 다른 물건이 되었다.
담배는 오래됐지만 궐련은 새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담배는 수천 년 묵은 식물이고, 유럽에 건너간 지도 500년이 넘었다. 그러나 20세기 이전 사람들이 담배를 쓰던 방식은 지금과 달랐다. 씹었고, 코로 들이켰고, 파이프나 시가로 태웠다. 이 방식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기를 폐 속까지 밀어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가와 파이프 연기는 알칼리성이다. 목구멍을 긁고 기침을 유발해서, 웬만해서는 깊이 들이마실 수가 없다. 니코틴은 입안 점막을 통해 천천히 흡수됐다. 씹는담배와 코담배도 마찬가지다. 폐는 이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다.

숫자로 보면 전환이 분명하다. 20세기가 시작될 때 미국인이 소비하는 담배의 대부분은 씹는담배였다. 1950년대가 되면 공장에서 만든 궐련이 1인당 담배 소비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반세기 만에 담배를 쓰는 방식 자체가 뒤집힌 것이다.
그러니 20세기의 담배 재앙을 "인간이 옛날부터 해오던 나쁜 습관의 결과"로 설명하면 시작부터 틀린다. 그 재앙은 습관이 아니라 제품의 문제였고, 그 제품은 1880년대에 만들어졌다.
1881년, 한 대의 기계
궐련은 원래 비쌌다. 손으로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숙련된 직공이 하루에 3,000개비를 말았다. 1881년 제임스 본색이 특허를 낸 자동 궐련 제조기는 같은 시간에 120,000개비를 뽑아냈다. 마흔 배다.

이 숫자가 뜻하는 바는 단순한 증산이 아니다. 궐련 한 개비의 원가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1885년 이 기계의 사용권을 확보한 제임스 듀크는, 갑자기 팔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그가 택한 답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광고를 퍼붓고, 값을 내리고, 새로운 소비자를 발명하는 것.
기계는 공급을 만들었고, 공급은 수요를 만들라고 압박했다. 듀크는 벌어들인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여 미국 담배 시장을 하나의 회사 아래 묶었고, 그 회사는 곧 대서양을 건너갔다. 20세기 광고 산업이 담배 위에서 자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팔아야 할 물건이 무한히 나오는데 그 물건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때, 필요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이 시기 담배 마케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일화는 1929년 부활절 행진이다. 여성들이 뉴욕 5번가에서 럭키 스트라이크에 불을 붙이며 그것을 "자유의 횃불"이라 불렀고, 기자들은 이미 귀띔을 받고 대기하고 있었다. 홍보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기획한 것이 맞다. 다만 그 행사가 여성 흡연의 물꼬를 텄다는 서사는 상당 부분 버네이스 본인이 만든 것이고, 여성 흡연은 그 이전부터 이미 늘고 있었다는 것이 당시 보도를 다시 검토한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홍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캠페인이 그 자체로 홍보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폐까지 들어가게 만든 화학
기계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들이 그 많은 궐련을 소비하려면 연기를 더 깊이, 더 자주 들이마셔야 했다. 그 문을 연 것은 잎을 말리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에서 자리 잡은 화력 건조는 밝은 빛깔에 당분이 많은 잎을 만들어냈다. 당분이 많은 잎은 탈 때 산성 연기를 낸다. 산성 연기는 목을 덜 자극한다. 덜 자극하니 폐 깊숙이 들어간다. 폐포는 입안 점막과는 비교도 안 되는 흡수 표면이다. 니코틴이 뇌에 닿는 시간이 몇 분에서 몇 초로 줄었다.

여기서 담배 산업이 마주친 것은 기묘한 딜레마다. 연기를 순하게 만들수록 잘 들이마시지만, 순한 만큼 "한 방"이 약해진다. 1960년대 필립 모리스가 찾아낸 답은 암모니아였다. 암모니아 처리는 연기 속 니코틴 일부를 자유염기 형태로 바꿔놓는다. 자유염기 니코틴은 훨씬 빠르게 흡수된다. 순한 연기와 강한 타격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말버러가 군소 브랜드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시기가 정확히 이때다. 회사는 니코틴 타격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이 처리를 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부인했다.
담배는 자연에서 온 물건이지만, 궐련은 설계된 물건이다. 무엇을 태울지, 어떤 pH로 태울지, 니코틴이 몇 초 만에 뇌에 닿을지가 전부 실험실에서 조정됐다.
40년 뒤에 도착한 청구서
20세기 초 의사들에게 폐암은 희귀한 병이었다. 평생 한 번도 못 보고 은퇴하는 의사가 있을 정도였다. 그 병이 1930년대부터 이상하게 늘기 시작했다.
원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 중 하나는 시차였다. 궐련이 대중화된 시점과 그 대가가 통계에 나타나는 시점 사이에는 수십 년이 놓여 있다. 1880년대에 시작된 소비 폭증의 청구서는 1930~50년대에 도착했다. 그동안 담배는 무해한 기호품처럼 보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용의자가 여럿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도시는 석탄 매연으로 뿌옜고, 자동차가 늘었고, 그 자동차를 위해 도로에 타르를 깔고 있었다. 폐암을 늘린 범인으로 이 셋이 담배보다 유력해 보였다. 리처드 돌 본인도 처음에는 도로 타르를 의심했다고 훗날 여러 차례 회고했다. 그가 놀란 것은 자기 가설이 틀려서가 아니라, 틀렸다는 사실이 데이터에서 그렇게 선명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1950년, 두 편의 연구가 각각 대서양 양쪽에서 나왔다. 미국의 언스트 와인더와 에바츠 그레이엄, 영국의 리처드 돌과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 돌과 힐은 런던의 병원 스무 곳에서 폐암 환자 1,465명과 같은 수의 나이 맞춘 대조군을 모아 비교했다. 하루 스물다섯 개비 이상 피우는 사람의 폐암 위험은 비흡연자의 스물다섯 배 수준이었다. 이듬해 시작된 영국 의사 코호트 연구는 이후 50년간 이어지며 이 결론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한 가지 더 정리해두자. 흔히 니코틴이 암을 일으킨다고 말하지만, 그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니코틴은 사람을 붙잡아 두는 물질이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타르에 섞인 발암물질, 일산화탄소, 그 밖의 연소 부산물. 니코틴 자체가 인체 발암물질이라는 증거는 확립돼 있지 않다. 이 구분이 사소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담배가 위험한 이유가 니코틴이 아니라 연소라면, 위험을 줄이는 지점도 거기여야 하기 때문이다.
필터라는 이름의 해결책
증거가 쌓이자 산업은 제품을 바꿨다. 필터를 달았고, 기계 측정 타르·니코틴 수치를 낮춘 "라이트"와 "마일드"를 내놓았다. 소비자에게는 덜 위험한 담배를 산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 감각은 틀렸다. 기계는 정해진 세기로 정해진 횟수를 빨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니코틴이 적게 나오면 더 깊이, 더 오래, 더 자주 빨아서 부족분을 채운다. 필터의 미세한 통기구멍은 손가락과 입술로 쉽게 막힌다. 이것을 보상 흡연이라고 부른다.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40년치 자료를 검토해 2001년에 펴낸 보고서의 결론은 냉정했다. 낮아진 기계 수치는 실제 노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고, 개인에게도 인구 집단에도 질병 부담을 줄였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었다.
필터가 완전히 무의미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필터가 걸러낸 만큼 사람이 더 빨아들였다는 데 있다. 제품 설계는 기계 측정값을 낮추는 방향으로 최적화됐고, 그 측정값은 사람이 실제로 들이마시는 양과 점점 멀어졌다. 규제와 표시 제도가 그 기계 측정값을 기준으로 삼는 동안, 숫자는 개선되는데 사람은 개선되지 않는 상태가 수십 년 이어졌다.
더 나쁜 일도 있었다. 더 깊이 빨아들인 연기는 이전의 담배 연기가 닿지 않던 폐 말초까지 들어갔다. 이 시기를 지나며 폐암의 주된 유형이 기관지 쪽 편평세포암에서 폐 깊은 곳의 선암으로 옮겨 갔다. 필터는 해악을 줄인 것이 아니라 재배치했다.

의심을 파는 일
1950년대의 산업은 두 갈래 길 앞에 있었다. 하나는 증거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증거를 흐리는 것이었다.
1953년 말 담배 회사 경영진들이 모여 홍보 회사와 함께 대응을 설계했고, 이듬해 신문 지면에 실린 성명은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략의 속내는 훗날 소송으로 공개된 내부 문서에 그대로 적혀 있다. 1969년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의 한 문건은 이렇게 쓴다.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사실의 덩어리'와 겨루는 최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이 문장이 거짓말을 팔겠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짓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인상만 유지하면 판단은 미뤄지고, 미뤄지는 동안 물건은 팔린다. 1964년 미국 공중보건국장 보고서가 7,000편이 넘는 연구를 검토한 끝에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고 결론 내린 뒤에도, 이 전략은 30년 넘게 이어졌다.

이 방법은 담배 바깥으로 퍼졌다. 석면이 그랬고, 여러 화학물질이 그랬고, 기후 문제가 그랬다. 역학자 데이비드 마이클스가 그 계보를 추적해 책으로 묶었을 때 제목은 저 문건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었다. 담배 산업이 남긴 가장 오래가는 발명품은 궐련이 아니라 의심을 제조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담배는 20세기에 1억 명을 죽였고, 지금도 해마다 800만 명 넘게 죽인다. 이 숫자를 만든 것은 식물이 아니라 기계와 화학과 광고와 법률이었다. 사람이 설계한 것은 사람이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인류는 80년을 썼고, 그 80년치 청구서는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