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두는 사람이 이긴다면 — 선 플레이어 이점을 보상하는 기술
일본기원이 덤을 5집반에서 6집반으로 올리자 흑 승률은 51.86%에서 50.37%로 내려왔다
바둑의 덤은 처음엔 없었고, 20세기 내내 4집반에서 7집반까지 값이 올랐다. 오목은 30년 넘게 흑의 수를 금지했지만 컴퓨터는 여전히 흑 필승이라고 답했다. 헥스의 스왑 규칙, 카탄의 역순 배치, 에이지 오브 스팀의 순서 경매까지, 게임 설계는 선공의 이점을 지우는 대신 값을 매겨 돌려주는 쪽으로 진화했다. 테라 미스티카 10만여 판의 자리별 승률로 50:50이라는 통념을 다시 본다.
2002년 가을, 도쿄 일본기원이 붙든 숫자는 51.86%였다. 덤 5집반 아래에서 흑을 쥔 쪽이 이긴 비율이다. 백 판을 두면 흑이 두 판쯤 더 이긴다는 뜻이니, 동네 기원이라면 웃고 넘길 차이다. 일본기원은 넘기지 않았다. 그해 11월 6일 이후 대국부터 덤을 한 집 올려 6집반으로 바꿨다. 다섯 달 가까이 688판을 모은 첫 보고에서는 51.6%로 찔끔 내려갔을 뿐이다. 이듬해 8월, 새 덤으로 치른 1,874판을 모아 다시 세어 보니 흑 승률은 50.37%로 내려와 있었다. 먼저 두는 이점을 없앤 게 아니다. 그 이점에 붙은 가격표를 고쳐 쓴 것이다.
덤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에도 시대 바둑에는 덤이 없었다. 실력이 비슷하면 판마다 흑백을 번갈아 쥐는 식으로 균형을 맞췄다. 일본 기록에 남은 첫 덤 바둑은 1837년 여럿이 편을 먹고 둔 연기(連碁)로, 흑이 5집을 내놓았다. 본격적인 덤은 20세기 들어서야 나온다. 1922년 생긴 기사 단체 히세카이가 4집반을 썼고, 일본에서는 1934년 무렵부터 4집반을 시험 삼아 쓰기 시작했다. 반집을 붙인 이유는 단순하다. 무승부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 뒤로 값은 계속 올랐다. 5집반은 1955년 왕좌전이 처음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널리 퍼진 건 1960년대이고 본인방전은 1974년에야 바꿨다. 한 해에 딱 바뀐 게 아니라 20년에 걸쳐 번졌다는 얘기다. 한국은 4집에서 5집, 5집반으로 올렸다가 1998년 LG배 세계기왕전이 6집반을 먼저 채택했다. 이듬해 명인전이 국내 기전으로는 처음 따라갔는데, 명분은 1998년 타이틀전 50판에서 흑이 31승을 거뒀다는 통계였다. 2003년 왕위전까지 바꾸면서 한국 기전은 모두 6집반이 됐다. 중국은 2002년 규칙에 3과 4분의 3자를 공제한다고 적었다. 돌 수로 세는 중국식 계산이라 표기가 이상해 보일 뿐, 우리 식으로는 7집반이다.
값이 왜 계속 올랐을까. 1999년 한 신문 기사에 실린 바둑계 반응이 답에 가깝다.
바둑 기술이 진보할수록 선착의 유리함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첫 수의 가치는 고정돼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첫 수를 잘 쓰게 될수록 그 값도 올라갔다.

같은 한 집, 다른 시세
일본기원의 2003년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예선에서는 흑이 50.96%를 이겼는데, 강자만 남는 본선에서는 오히려 백이 52.55%를 이겼다. 본선 표본이 314판뿐이라 믿을 만한 숫자는 아니라고 보고서도 적었다. 그래도 같은 6집반이 실력대에 따라 흑 편도, 백 편도 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는다.
한국 쪽 분석은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2004년 조전혁 인천대 교수와 정수현 명지대 교수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프로 공식 대국을 전부 모아, 흑이 불계승에서 54.4%, 계가승에서 55.7%를 가져갔다고 발표했다. 계가한 판의 집 차이를 계산하니 흑이 1.007집쯤 유리했고, 두 교수는 덤이 7집반이어야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덤은 정답이 아니라 시세다. 나라마다 6집반과 7집반으로 갈리고, 같은 규칙 안에서도 누가 두느냐에 따라 기우는 쪽이 달라진다. 참고로 체스는 백의 승률이 조금 높은 채로 가격표 없이 그냥 둔다.

금지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격을 매기는 대신 먼저 둔 쪽의 손발을 묶는 방법도 있다. 오목이 그 길을 갔다가 한 세기 동안 실패한 사례다. 1899년 일본의 한 신문기자가 연주(렌주)라는 이름을 붙인 그해, 양쪽 모두 삼삼을 못 두게 하는 실험이 시작됐다. 1903년에는 금수를 흑에게만 적용했고, 1912년에는 흑이 삼삼을 두면 막는 수였더라도 바로 지게 했다. 1916년 여섯 개 이상 잇는 장목이 금지됐고, 1918년에 금수가 하나 더 붙었다. 1931년에는 판을 19줄에서 15줄로 줄이고 사사까지 막자는 제안이 나왔다. 선공을 묶는 방법이라면 거의 다 해 본 셈이다.
그리고 컴퓨터가 계산을 끝냈다. 빅토르 알리스는 1990년대 초 15×15 오목이 흑 필승이라는 걸 전수 탐색으로 증명했고, 1994년 박사논문으로 정리했다. 2001년에는 바그네르와 비라그가 오프닝 제한이 없는 렌주도 흑 필승이라고 밝혔다. 30년 넘게 금수를 쌓았는데도 수학은 여전히 흑의 손을 들어 줬다.
그래서 현대 렌주와 오목은 방향을 틀었다. 흑을 더 묶는 대신, 판 첫머리에 누가 어느 색을 쥘지 고르게 하는 오프닝 규칙을 도입했다. 렌주 세계선수권은 2017년부터 소소르브-8 규칙을 쓰는데, 여기에도 도중에 색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들어 있다. 첫 돌을 가운데 두게 하는 프로 규칙을 쓴 1989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는 흑이 67%를 이겼다. 2009년 도입된 스왑2 아래에서는 선공 승률이 52%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집계된다.

자르는 사람과 고르는 사람
스왑2의 뿌리는 케이크 나누기다. 한 사람이 자르고 다른 사람이 먼저 고른다. 이른바 파이 규칙이고, 1909년 만칼라 계열 게임에서 이미 기록이 보인다. 이 규칙이 가장 빛나는 곳이 헥스다.

헥스는 1942년 덴마크의 피에트 하인이 만들고, 몇 년 뒤 프린스턴의 존 내시가 다시 만들었다. 무승부가 날 수 없는 게임이다. 내시는 여기서 선공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아주 짧게 보였다. 만약 후공에게 필승법이 있다면, 선공은 첫 수를 아무 데나 두고 나서 자기가 후공인 척 그 필승법을 훔쳐 쓰면 된다. 헥스에서는 내 돌이 한 개 더 있어서 손해 보는 일이 없으니, 후공 필승법이 있다는 가정이 모순이 된다. 이른바 전략 도용 논증이다.
문제는 이 증명이 이기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컴퓨터는 2013년에야 9×9 판의 모든 첫 수를 풀었고, 10×10은 가운데 첫 수 하나만 풀었다. 표준 11×11 판에서 선공이 어떻게 이기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2019년 보드윈과 그로스먼은 전략 도용 논증이 통하는 일부 게임에서 그 수를 찾는 문제가 계산상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보였다. 증명이 존재를 알려 줄 뿐, 길은 알려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길 수 있다는 건 증명됐다. 어떻게 이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헥스는 그 틈에 스왑 규칙을 끼웠다. 선공이 첫 수를 두면 후공은 그 수를 자기 것으로 가져갈지 정한다. 이론상 이제 후공이 이긴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선공에게 새 기술이 생긴다.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서 상대가 뺏을지 말지 망설일 첫 수를 찾는 기술이다. 바둑에도 같은 발상이 있다. 한 사람이 덤을 부르고, 다른 사람이 그 덤을 받을지 색을 바꿀지 고른다.
보드게임이 붙인 가격표
유로게임은 이 가격을 여러 방식으로 매긴다. 가장 흔한 건 정찰제다. 워터딥의 군주들은 선 플레이어에게 금화 4개를 주고 왼쪽으로 한 명씩 갈 때마다 하나씩 더 준다. 아그리콜라는 선 플레이어에게 식량 2개, 나머지에게 3개를 준다. 게다가 아그리콜라에서 선 자리는 저절로 돌지 않는다. 일꾼 하나를 선 플레이어 칸에 보내야 가져올 수 있다. 순서가 행동 한 번으로 사는 물건이 된 셈이다.
카탄의 초기 배치는 순서를 뒤집어 값을 맞춘다. 첫 바퀴에는 선 플레이어부터 시계 방향으로 개척지를 하나씩 놓고, 둘째 바퀴에는 마지막 사람부터 거꾸로 놓는다. 시작 자원은 두 번째 개척지 옆 타일에서만 받는다. 넷이 하면 선 플레이어는 첫째와 여덟째로 두고, 넷째 자리는 넷째와 다섯째를 연달아 둔다. 명당을 먼저 차지하는 대신 조합은 가장 늦게 맞춰야 하는 거래다.
테라 미스티카는 이 장치를 겹겹이 쌓았다. 첫 집은 선 플레이어부터, 둘째 집은 마지막 사람부터 놓는다. 보너스 카드는 마지막 사람이 먼저 고른다. 라운드에서 가장 먼저 패스한 사람이 다음 라운드 선이 되니, 행동을 포기하는 것으로 순서를 산다. 다만 진영 보드는 선 플레이어부터 고르니, 마지막 사람은 남은 진영 중에서 골라야 한다. 이 장치들이 서로 얼마나 상쇄될까. 온라인 서버 스넬먼에 쌓인 4인 게임 10만 5천여 판을 직접 세어 보니, 첫 자리 승률은 26.82%, 마지막 자리는 22.44%였다. 모든 참가자가 레이팅 1000 이상인 4만 2천여 판만 추리면 27.57% 대 20.31%로 더 벌어진다. 보상을 겹겹이 쌓아도 틈은 남고, 잘 두는 사람일수록 그 틈을 크게 벌린다. 바둑에서 본 그림이다.
아예 시장에 맡기는 게임도 있다. 에이지 오브 스팀은 매 턴 순서를 경매에 부친다. 가장 먼저 포기한 사람은 꼴찌 자리를 공짜로 받고, 끝까지 남은 두 사람은 부른 값을 다 내고, 중간에 빠진 사람은 절반만 낸다. 도미니언은 더 조용한 방법을 쓴다. 점수가 같으면 턴을 덜 쓴 사람이 이긴다.

50:50은 목표가 아니었다
잘 만든 게임이라면 선후공 승률이 50 대 50이어야 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지금까지 본 숫자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일본기원은 51.86%를 50.37%로 내렸지만 본선에서는 백이 앞섰다. 헥스와 오목은 선공 필승이 증명된 채로 여전히 사랑받는다. 스왑2를 쓰는 오목도 52% 언저리에서 멈췄다. 완벽한 50은 아니지만, 색을 고르는 권리까지 판 위에 올려놓으니 남은 2%는 실력 차이에 묻힌다. 테라 미스티카는 보상을 몇 겹 둘렀어도 자리마다 승률이 다르다.
50 대 50을 끝내 못 맞춘 이유는 그게 한 번 맞추면 끝나는 숫자가 아니어서다. 첫 수의 값은 기술이 발전하면 오르고, 실력대마다 다르고, 판을 둘러싼 사람이 바뀌면 또 움직인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은 규칙들은 값을 한 번에 정하지 않았다. 덤은 수십 년에 걸쳐 고쳐 적는 정찰제였다. 카탄과 워터딥은 설계자가 미리 흥정을 끝낸 가격표를 내놓았다. 에이지 오브 스팀과 파이 규칙은 칼을 아예 플레이어에게 넘겼다.
마지막 방식이 가장 영리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설계자가 정한 값은 언젠가 낡는다. 덤이 4집반에서 7집반까지 오는 데 70년 안팎이 걸렸다. 반면 플레이어가 정하는 값은 판마다 새로 매겨진다. 초보끼리의 헥스에서는 대충 둔 첫 수도 스왑 대상이 되고, 고수끼리라면 첫 수 한 칸의 차이를 두고 고민한다. 경매도 마찬가지다. 순서가 얼마의 가치인지 아는 사람이 더 정확한 값을 부른다. 시세를 매기는 능력 자체가 실력의 일부가 된다.
먼저 두는 쪽이 이긴다는 사실은 게임의 결함이 아니다. 좋은 설계는 그 비대칭을 지우려 들지 않는다. 값을 붙여 판 위에 올려놓고, 그 값을 플레이어가 흥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