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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2026-08-2610분 읽기

밤을 두 번 자던 사람들 — 우리는 원래 이렇게 자지 않았다

첫잠과 두 번째 잠, 한 침대에 여럿, 그리고 손목이 매기는 수면 점수까지

8시간 통잠도, 부부가 한 침대를 쓰는 것도, 혼자 자는 방도 전부 근대의 발명이다. 로저 에커치가 옛 문서에서 발견한 '첫잠'과 '두 번째 잠',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었던 침대, 전등과 공장 시계가 잠을 하나로 묶은 과정, 그리고 수면 점수에 시달리는 오늘까지. 잠의 형태를 정해온 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조명과 주거와 노동이었다는 이야기.

버지니아 공대의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는 영국 지방 법원의 오래된 진술 기록을 뒤지고 있었다. 산업화 이전의 밤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종이를 넘길수록 같은 구절이 자꾸 걸렸다. "첫잠(first sleep)에서 깨어난 뒤에", "두 번째 잠(second sleep)이 들기 전에". 처음엔 낡은 관용구려니 했다. 하지만 같은 표현이 다른 세기, 다른 장르, 다른 언어의 문서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누구도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밤에 두 번 잤다.

밤을 두 번 자던 사람들

흔히 인간은 원래 밤에 여덟 시간을 내리 자게 되어 있고, 그걸 못 하면 어딘가 고장 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산업화 이전의 문서를 뒤져보면 그런 잠은 어디에도 없다.

에커치가 2001년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에 발표한 논문 「우리가 잃어버린 잠」은 그렇게 모은 수백 건의 언급을 한자리에 모았다. 법정 진술서, 일기, 의학서, 기도서, 희곡, 재판 기록. 영어의 first sleep에 대응하는 말이 다른 언어에도 있었다. 프랑스어의 premier sommeil, 이탈리아어의 primo sonno, 라틴어의 primo somno.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등장인물이 "첫잠"을 자고 깨어난다.

패턴은 이렇다. 해가 지고 얼마 뒤 잠들어 자정 무렵 저절로 깬다. 한 시간 남짓, 길면 두어 시간 깨어 있다가 다시 잠들어 새벽에 일어난다. 흥미로운 건 그 사이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때 기도했고, 방금 꾼 꿈을 곱씹었고, 불을 살폈고, 어둠 속에서 옆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부부는 그때 관계를 가졌다. 16세기 의학서 중에는 첫잠에서 깬 뒤가 임신에 가장 좋은 때라고 조언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 표현들은 19세기를 지나며 문서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에커치의 해석은 단순하다. 밤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의 문헌 해석으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흥미로운 각주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에커치가 논문을 쓰기 전에,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정신과 의사 토머스 웨어(Thomas Wehr)가 사람을 데리고 비슷한 밤을 재현한 적이 있다.

웨어는 실험 참가자들의 밝은 시간을 하루 열여섯 시간에서 열 시간으로 줄였다. 어둠이 열네 시간, 그러니까 한겨울 밤의 길이가 된 것이다. 그러자 잠이 늘어났고, 이내 스스로 두 덩이로 갈라졌다. 몇 시간 자고, 한 시간에서 세 시간쯤 가만히 깨어 있고, 다시 몇 시간 잤다. 1992년 『저널 오브 슬립 리서치』에 실린 이 논문의 제목이 결론이다. 「짧은 광주기에서 인간의 잠은 두 토막이 된다」.

그러니까 통잠은 우리 몸의 기본 설정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둠이 길면 잠은 저절로 두 조각으로 나뉜다. 밤이 여덟 시간으로 짧아진 세계에서만 잠은 한 덩어리가 된다.

한밤을 첫잠과 두 번째 잠으로 나눠 자는 장면
그림 1분절 수면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잤을까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면 새로운 통념이 하나 더 생긴다. "인류의 원래 수면은 분절 수면이었다"는 통념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2015년 UCLA의 제롬 시걸 연구팀은 전기가 없는 세 사회의 잠을 실측했다. 탄자니아의 하드자, 나미비아의 산, 볼리비아의 치마네. 손목에 활동 기록계를 채워 실제로 잰 결과, 이들은 하루 5.7~7.1시간을 잤다. 현대 도시인보다 길지 않았다. 해가 진 뒤 평균 3.3시간이 지나서야 잠들었고, 대개 해 뜨기 전에 깼다. 겨울엔 여름보다 53~56분 더 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뚜렷한 두 토막 수면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잠을 조절하는 것이 빛보다 기온의 하강일 수 있다고 봤다.

2023년에는 정면 반박도 나왔다. 니얼 보이스는 『메디컬 히스토리』에서 초기 근대 문헌의 "첫잠"이 반드시 뚜렷하게 구분된 두 토막 잠을 가리킨다고 볼 근거가 약하며, 같은 문장을 달리 읽을 여지가 여럿 있다고 주장했다. 에커치는 이듬해 같은 학술지에 반론을 실어, 보이스가 2001년 논문만 붙들고 이후 이십 년간 축적된 자료를 건너뛰었다고 되받았다.

논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다만 이게 어느 쪽으로 끝나든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어느 쪽이 이기든 패배하는 건 하나다. 인간에게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수면 형태가 있다는 생각.

하나의 수면 도식을 여러 생활 조건과 비교하는 장면
그림 2과거 수면을 하나의 보편 모델로 일반화하지 않게 한다.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

잠의 형태만 달랐던 게 아니다. 잠을 담는 그릇 자체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웨어의 대침대(Great Bed of Ware)'라는 물건이 있다. 1590년대 하트퍼드셔 웨어에서 만들어진 참나무 침대인데, 폭 326센티미터, 깊이 338센티미터, 높이 267센티미터다. 방 하나만 하다. 런던과 북부를 잇는 역참 마을의 여관이 손님을 끌려고 만든 구경거리였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1596년 독일인 여행자가 이 침대를 봤다고 기록했고, 셰익스피어는 1601년 『십이야』에서, 벤 존슨은 1609년에 이 침대를 언급했다. 기둥과 머리판에는 다녀간 사람들이 새긴 이니셜과 붉은 봉랍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

침대가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시대에 침대가 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근대 잉글랜드의 잠을 연구한 맨체스터대의 사샤 핸들리에 따르면, 침대 일습은 유산 목록에서 집 안 동산 중 최고가 품목으로 적히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값을 매기면 비싼 쪽은 나무 골조가 아니라 그 위에 얹힌 것들이었다. 깃털 요, 매트리스, 이불, 사방을 두르는 커튼. 영어로 이 침구 일습을 '퍼니처(furniture)'라 불렀다.

셰익스피어가 1616년 3월 유언장에서 아내 앤 해서웨이에게 "두 번째로 좋은 침대와 그 퍼니처"를 남긴 것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오랫동안 이 구절은 부부 사이가 나빴다는 증거로 인용됐다. 하지만 가장 좋은 침대는 손님용이었고, 두 번째 침대가 부부가 실제로 쓰던 잠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그건 물려줄 만한 재산이었다.

침대는 잠의 도구이기 이전에 재산이었다. 잠은 그 재산의 여러 용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집 안에서 유난히 크고 값비싼 공동 침대
그림 3침대가 재산이자 공유 공간이었던 시대를 압축한다.

한 방에 여럿, 한 침대에 여럿

혼자 자는 방도 근대의 발명이다.

산업화 이전 유럽의 집에는 '침실'이라는 전용 공간 개념이 희박했다. 하인은 주인 부부와 같은 방에서 잤고, 아이들은 형제자매와 한 침대를 썼고, 여관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나란히 누웠다. 잠자리를 함께 쓰는 일은 은밀하지도 성적이지도 않았다. 핸들리의 표현을 빌리면 잠은 사적인 행위라기보다 사교의 연장이었다. 누구와 자느냐는 신뢰와 지위의 문제였다.

부부가 한 침대를 쓰는 것이 결혼의 당연한 형식이 된 것도 생각보다 최근이다. 랭커스터대의 힐러리 힌즈가 쓴 트윈 베드의 문화사는 그 뒤집힘을 보여준다. 한때 서구에서 침대를 따로 쓰는 것은 사이가 나쁜 부부의 궁색한 타협이 아니라 위생적이고 근대적인 부부의 표식이었다. 그러다 취향이 다시 뒤집혔고, 오늘날 더블 침대는 친밀함 그 자체로 읽힌다. 같은 가구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정반대 의미를 뒤집어쓴 것이다.

전등이 잠을 하나로 묶었다

밤을 접은 것은 빛이었다. 1667년 파리가 거리에 등을 내걸기 시작했고, 1807년 런던 팰맬에 가스등이 켜졌고, 1882년 에디슨의 펄가 발전소가 맨해튼 일부에 전기를 흘렸다. 밤은 더 이상 하루의 절반이 아니라 낮의 연장이 됐다.

빛만으로는 부족했다. 시계가 필요했다. E. P. 톰슨이 1967년 논문에서 정리한 대로, 산업자본주의는 일이 끝나면 쉬는 '과업 시간'을 공장 종소리에 맞춘 '시계 시간'으로 바꿔놓았다. 정해진 시각에 출근하려면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밤을 통째로 자야 한다. 한밤중에 두 시간씩 깨어 있는 습관은 태만이 됐다.

이게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는 지금도 관찰된다. 2015년 아르헨티나 차코 지역의 토바/콤 공동체 두 곳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같은 민족, 같은 문화인데 한쪽에는 전기가 들어오고 한쪽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가 있는 쪽은 겨울에 56분 덜 잤고, 여름에도 43분쯤 덜 자는 경향이 나타났다. 차이는 주로 잠드는 시각에서 왔다. 일어나는 시각은 양쪽이 비슷했다. 전등은 우리를 늦게 재웠을 뿐, 늦게까지 자게 해주지는 않았다.

침대도 바뀌었다. V&A에 남은 1840~60년대 버밍엄산 침대는 다리와 골조가 주철이다. 목수가 참나무를 깎던 자리에 주물 공정이 들어온 것이다. 부품을 찍어 만들 수 있게 되자 침대는 대를 물려 쓰는 재산에서 사서 갈아 치우는 물건 쪽으로 조금씩 옮겨 갔다.

전등과 시계가 두 번의 잠을 한 덩어리로 묶는 장면
그림 4산업화된 시간과 인공조명이 수면 습관을 바꾼 과정을 보여준다.

완벽한 잠이라는 상품

인류학자 매튜 울프마이어는 미국 수면의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한 책에서, '밤에 한 번, 여덟 시간, 방해 없이'라는 규범이 자연의 명령이 아니라 의학과 노동 사회가 함께 세운 표준이라고 지적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수면 연구실과 수면 클리닉이 늘면서 잠은 처음으로 측정 가능한 대상이 됐다. 측정에는 기준이 따르고, 기준이 서면 이탈에 이름이 붙는다. 그가 '홀로 자는 사람'이라 부른 이 표준적 수면자는 실은 공장과 사무실의 근무 시간표에 몸을 맞춘 사람이다.

표준이 서면 시장도 선다. 20세기 후반 이후 스프링과 폼을 갈아 끼운 매트리스, 수면제, 암막 커튼, 백색소음기, 잠을 팔겠다는 호텔 상품이 차례로 그 자리를 채웠다. 완벽한 잠은 마침내 살 수 있는 물건이 됐다.

가장 최근에 도착한 건 숫자다. 2017년 켈리 배런 연구팀은 『임상수면의학저널』에 새 단어를 제안했다. 오소솜니아(orthosomnia). '올바른(ortho) 잠(somnia)'에 대한 집착이다. 환자들이 손목 밴드가 매긴 수면 점수를 들고 병원에 온다. 잘 잤다고 느끼는데 기기가 낮은 점수를 주면 자신의 감각을 의심한다. 검증된 수면다원검사보다 추적기 숫자를 더 믿는다. 그리고 점수를 올리려 애쓰다가 진짜로 잠을 망친다. 완벽한 잠을 좇는 노력이 불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한밤중에 눈이 떠졌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 서늘한 실패감을 생각해 본다. 시계를 확인하고,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조바심 속에서 다시 잠들려고 애쓴다. 400년 전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그냥 깨어 있었을 것이다. 불을 뒤적이고, 옆 사람과 몇 마디 나누고, 방금 꾼 꿈을 되짚다가, 때가 되면 두 번째 잠에 들었을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몸은 아니다. 달라진 건 밤의 밝기, 아침의 출근 시각, 그리고 손목에 채운 기계가 매기는 점수다. 잠의 형태를 정해온 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조명과 주거와 노동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는 이 잠도 결국 한 시대의 형식일 것이다.

손목 기기가 잠에 점수를 매겨 상품처럼 진열하는 장면
그림 5수면 최적화가 새로운 불안과 시장을 만드는 역설을 드러낸다.

다음 세기의 사람들은 우리가 잠을 어떻게 잤다고 기록할까.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다고 여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