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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2026-08-1210분 읽기

화장의 역사: 얼굴에 새긴 욕망과 권력

콜에서 세루스까지, 인간이 얼굴로 말해 온 것들

화장은 허영이 아니라 인간이 얼굴로 신분과 소속, 권력과 저항을 말해 온 5천 년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놀랄 만큼 자주, 아름다움의 대가로 독을 요구했다.

1760년 가을, 런던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여자가 스물일곱 나이로 침대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코번트리 백작 부인 마리아 거닝. 시골 출신의 무명이었던 그녀는 오직 얼굴 하나로 사교계를 정복했고, 그 얼굴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하얀 분을 두껍게 발랐다. 문제는 그 분의 정체였다. 납이었다. 피부는 분을 바를수록 상했고, 상한 피부를 가리려 분을 더 발랐다. 잇몸이 검게 물들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동안에도 그녀는 화장을 멈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제 허영의 희생자"라 불렀다. 하지만 마리아 거닝의 이야기를 단순한 허영담으로 읽으면, 인류가 얼굴에 새겨 온 훨씬 길고 복잡한 문장을 놓치게 된다.

흔히 화장은 근대의, 여성의, 사치스러운 습관이라고들 한다.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화장은 문명만큼 오래됐고, 남녀와 계급을 가리지 않았으며, 대개는 허영이 아니라 실용과 주술과 정치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언어는 놀랄 만큼 자주, 아름다움의 대가로 독을 요구했다.

얼굴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게시판

기원전 3100년경,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인들은 이미 눈가에 검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콜(kohl)이라 불린 이 눈화장의 재료는 주로 갈레나, 즉 황화납이었다. 파라오도 발랐고 신관도 발랐으며 노동자와 아이들도 발랐다. 화장은 특정 성별이나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얼굴을 가진 모든 사람의 일이었다.

이집트인이 눈을 검게 칠한 이유는 여러 겹이다. 강한 햇빛의 반사를 줄이는 실용적 효과가 있었고 — 오늘날 운동선수가 눈 밑에 검은 칠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 파리와 감염으로부터 눈을 지키려는 위생적 목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검은 눈은 신성했다. 매의 신 호루스의 눈, 즉 '우자트'는 보호와 치유의 상징이었고, 콜로 그려 넣은 눈매는 그 부적을 얼굴에 새기는 일이었다.

콜은 사치품이 아니었다. 가난한 이도 작은 항아리에 콜을 담아 지녔고, 갓난아기의 눈가에도 발랐다. 얼굴을 검게 칠하는 일은 몸단장이자 종교 의례였고 동시에 위생 관리였던 셈이다. 실제로 후대의 성분 분석에서 이집트식 눈화장 성분이 특정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항균성을 보인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우리가 '독'이라 부르는 것과 '약'이라 부르는 것의 경계는, 고대의 화장대 위에서 지금보다 훨씬 흐릿했다.

흥미로운 건 그 독조차 목적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2010년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필리프 발테르 연구진은 이집트 화장품 표본을 분석해, 자연에서 흔치 않은 인공 납염화물이 며칠에 걸쳐 일부러 합성됐음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미량의 납 이온이 피부 세포에서 일산화질소 생성을 자극해, 나일강 습지에서 흔하던 눈병에 대한 면역 반응을 높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장의 시작은 거울 앞의 자아도취가 아니라, 신과 자연과 질병 앞에 선 인간의 방어이자 기도였다.

얼굴에 지위와 소속의 기호를 게시하는 장면
그림 1화장을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신호로 제시한다.

로마, 흰 얼굴이 치른 값

이집트가 검은 눈이라면 로마는 흰 얼굴이었다. 로마의 상류층 여성들은 창백한 피부를 귀족의 표식으로 여겼다. 햇볕 아래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신분, 그 여유를 얼굴색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들이 쓴 미백제는 세루사(cerussa), 곧 백연 — 다시 납이었다. 뺨과 입술은 진사(수은)나 붉은 황토로 물들였으니, 로마의 화장대는 사실상 중금속 진열장이었다. 로마인들은 납이 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썼다. 흰 피부의 값이 그만큼 비쌌다.

로마에서 또 하나 시작된 것이 있다. 화장을 둘러싼 도덕 논쟁이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여인의 얼굴 화장법』이라는 실용 지침서까지 써서 "가꾸는 것도 아름다움의 일부"라고 옹호했지만, 유베날리스나 마르티알리스 같은 풍자가들은 화장한 여자를 '가짜'이자 '기만'이라 비웃었다. 화장이 진짜 얼굴을 속인다는 이 오래된 불안은, 이후 이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흰 화장 안료와 독성의 값을 저울질하는 장면
그림 2미의 기준을 위해 감수한 납·수은의 위험을 묶어 보여준다.

독을 바른 여왕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면 흰 얼굴 숭배는 절정에 달한다.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값비싼 화장품은 '베네치안 세루스'였다. 백연을 식초에 개어 만든 이 미백제는 순도가 높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앞다투어 발랐다.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 하나를 짚고 가자.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이 세루스를 가면처럼 두껍게 발라 납에 중독됐다는 통설이다. 여왕이 1562년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흉터가 남았고 이를 하얀 분으로 가렸다는 서사는 강렬하다. 실제로 만년의 여왕은 나이도 흉터도 드러나지 않는 균일한 흰 얼굴, 이른바 '젊음의 가면'으로 초상화에 박제되었다. 다만 그 가면이 정말 납이었는지, 그로 인해 여왕이 중독됐는지를 당대 사료로 확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다수 역사가의 신중한 지적이다. 흰 얼굴은 젊음의 위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동하지 않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확실한 것은 통설 속 인물이 아니라 마리아 거닝처럼 기록이 남은 이들이다. 백연 화장은 피부를 상하게 했고, 상한 피부는 더 두꺼운 화장을 불렀으며, 그 악순환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실제로 앗아갔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바른 것이 얼굴을 망가뜨리고, 망가진 얼굴을 가리려 다시 그것을 바르는 것 — 독이 든 화장품의 논리는 언제나 이 폐쇄회로였다.

남자들이 얼굴을 지운 날

화장이 여성의 것이라는 생각도 역사적으로는 최근의 발명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와 로마의 멋쟁이 귀족 남성들은 스스럼없이 얼굴을 칠했고, 18세기 유럽에서는 '마카로니'라 불린 남성들이 등장했다. 1760~70년대 런던에서 이탈리아 유행을 들여온 이 젊은 멋쟁이들은 높이 세운 가발에 분을 뿌리고 뺨에 연지를 얹고 애교점을 붙였다. 화려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마카로니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남자답지 못한, 경박한, 정체 모를 존재로 비웃었다. 이 조롱 속에서 하나의 관념이 굳어진다. 얼굴을 꾸미는 일은 남자다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산업화가 진행되며 남성성은 노동·절제·꾸미지 않음과 묶였고, 화장은 그 반대편으로 밀려났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는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화장은 배우와 매춘부의 것, 정숙한 여인이라면 멀리해야 할 기만으로 낙인찍혔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꾸미지 않은 남자 얼굴'이란, 실은 특정 시대가 만들어 낸 발명품인 셈이다.

이 시기 자주 인용되는 일화가 있다. 1770년 영국 의회가 여성이 향수·가발·의치·화장으로 남자를 홀려 결혼했다면 그 혼인을 마법 행위로 간주해 무효로 할 수 있게 했다는 법령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면서도 원 법령이 확인되지 않는, 진위가 불분명한 전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전설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화장을 '속임수'로 보는 불안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증언한다. 더 확실한 기록은 오히려 근대에 있다. 1915년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마흔넷 미만의 여성이 '거짓 인상을 꾸밀 목적으로' 화장하는 것을 경범죄로 규정하려는 입법이 시도됐다. 화장을 사기이자 유혹의 도구로 보는 시선은, 마녀사냥의 시대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규범의 커튼이 남성 화장의 역사를 가리는 장면
그림 3화장이 여성의 것으로 재분류된 문화적 전환을 설명한다.

산업이 된 얼굴, 그리고 뒤늦은 규제

낙인은 오래가지 못했다. 20세기 초, 영화가 모든 것을 바꿨다. 스크린 속 배우의 얼굴을 만들던 맥스 팩터가 1909년 할리우드에 문을 열었고,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엘리자베스 아든이 화장품을 대량 생산 상품으로 바꿨다. 1920년대에는 립스틱이 폭발적으로 팔렸다. 한때 매춘부의 표식이던 붉은 입술이, 이제는 신여성의 자립과 자유의 기호가 되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산업이 오랫동안 아무 규제 없이 굴러갔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건이 '래시 루어'다. 1933년 미국에서 팔린 이 속눈썹 염색제는 아닐린 계열 독성 성분을 담고 있어, 사용한 여성들에게 심한 궤양과 실명을 일으켰고 사망자까지 냈다. 이 참극은 미국 식품의약국이 규제 필요성을 알리려 꾸린 '미국의 공포의 방' 전시의 상징이 되었다.

법을 실제로 움직인 결정타는 화장품이 아니라 100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1937년의 엘릭시르 설파닐아마이드 의약품 참사였지만, 래시 루어가 남긴 얼굴들은 그 입법 운동에 화장품이라는 얼굴을 달아 주었다. 결국 1938년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이 통과되며 화장품은 처음으로 연방의 감독 아래 놓였다 — 세루스가 여왕들을 위협한 지 수백 년 만의 일이었다. 그마저도 완전한 통제는 아니어서, 미국의 화장품 규제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느슨하기로 유명했다.

화장품 생산 라인을 뒤늦게 쫓아가는 규제 표지판
그림 4대량생산과 안전 규제 사이의 시간차를 보여준다.

'천연이라 안전하다'는 마지막 착각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럼 옛날의, 자연에서 온 화장품이 차라리 안전하지 않았을까. 이 통념이야말로 이 역사가 가장 힘주어 반박하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인류를 병들게 한 화장품은 대부분 '천연'이었다. 납도 수은도 비소도 땅에서 캐낸 자연의 물질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창백한 피부를 얻으려 비소가 든 미용 웨하스를 삼켰고, 주근깨를 지운다며 수은이 든 크림을 발랐다. 20세기 초에는 방사성 물질 라듐을 넣은 화장품이 '빛나는 피부'를 약속하며 팔리기도 했다. 하나같이 자연에서 온 원소였지만, 하나같이 몸을 갉아먹었다.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은 그 어떤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다. 독성은 물질과 용량의 문제이지, '천연'인지 '인공'인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박물관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에서 전통 눈화장 콜(카잘, 수르마)이 '천연 허브' 화장품으로 팔리지만, 상당수가 여전히 다량의 납을 함유한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이런 제품의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특히 아이들에게 발랐을 때 발달을 해치는 납중독을 일으킨다고 거듭 경고한다. 5천 년 전 나일강에서 시작된 검은 눈이, 같은 금속을 안고 오늘의 아이들 눈가에 닿고 있는 셈이다.

화장의 역사는 결국 얼굴이라는 페이지에 인간이 무엇을 써 왔는가의 기록이다. 신분과 소속, 권력과 저항, 소속되고 싶은 욕망과 남과 달라지고 싶은 욕망을 우리는 늘 얼굴로 말해 왔다. 마리아 거닝이 마지막까지 분을 놓지 못한 것도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그 얼굴이 곧 그녀의 언어이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울 앞에 설 때 물어볼 만하다. 오늘 내 얼굴은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문장은 어떤 값을 치르고 있는가.

천연 원료에도 안전 검사를 적용하는 장면
그림 5원료의 출처보다 검증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