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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2026-07-268분 읽기

주사위와 문명

우르의 무덤에서 킥스타터의 화면까지, 게임판은 인류가 스스로를 비춰 본 가장 오래된 거울이다.

사람은 5,000년째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규칙을 정하고, 말을 놓고, 주사위를 던지며 마주 앉는 것. 그 작은 판 위에는 매번 그 시대의 죽음관과 신, 계급과 돈, 그리고 인간이 질서를 갈망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접혀 들어갔다. 보드게임의 역사는 오락의 연대기가 아니라, 문명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가장 오래된 게임판들은 오락실이 아니라 무덤에서 나왔다. 1920년대 후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는 이라크 남부 우르의 왕실 묘역을 파다가 자개와 청금석으로 상감한 스무 칸짜리 판을 여럿 발굴한다. 기원전 2500년경의 물건, 이른바 '우르의 게임(Royal Game of Ur)'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도시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방에서, 인류가 남긴 가장 이른 게임판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단서다. 놀이는 처음부터 여흥 이상의 무엇이었다.

무덤 속의 게임판 — 놀이가 죽음을 건너는 법

이집트의 세네트(Senet)도 같은 자리에서 발견된다. 투탕카멘의 부장품 가운데 온전한 세네트 판이 여러 벌 들어 있었다. '세네트'라는 이름 자체가 '통과하다(passing)'라는 뜻으로 읽히고,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70년경)에 이르면 이 게임판은 사자(死者)의 영혼 '카(ka)'가 저승 두아트를 건너는 여정의 축소판으로 여겨졌다. 『사자의 서』 17장 삽화에는 죽은 이가 보이지 않는 상대와 세네트를 두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기면 영생이었다.

다만 여기서 통념 하나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세네트는 처음부터 종교적 게임이 아니었다. 초기 세네트는 그저 놀이였고, 저승과의 연결은 거의 2,000년에 걸쳐 나중에 덧입혀진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오래된 게임이 신성했다'가 아니라, 한낱 소일거리가 어떻게 한 문명의 죽음관을 담는 그릇으로 자라났는가라는 진화 그 자체다. 우르의 게임을 두고도 비슷한 조심이 필요하다. 이 게임이 점술에 쓰였다는 주장, 그리고 우리가 아는 규칙 대부분은 큐레이터 어빙 핀켈이 해독한 기원전 177년경의 점토판에 근거하는데, 이 문서는 발굴된 판보다 1,500년 이상 뒤의 것이다. 우리가 '아는' 우르의 규칙은 사실 후대의 재구성에 가깝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만칼라다. 씨앗이나 돌을 구멍에 '뿌리며' 옮기는 이 셈-포획 게임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게임'으로 소개되며, 요르단 아인 가잘의 신석기 주거지 바닥에서 나온 기원전 5870년경의 홈 배열이 근거로 인용된다. 그러나 이 홈들이 정말 게임판이었는지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이다. 곡물 계량이나 셈의 흔적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만칼라가 아프리카에서 자라나 중동과 아시아로 퍼진, 흙과 손과 씨앗만으로 성립하는 가장 물질 없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왕의 무덤에는 상감한 판이, 마을의 흙바닥에는 파낸 구멍이 있었다. 놀이는 계급을 가리지 않았다.

dkdk가 고대 무덤 속에서 죽음과 통과를 상징하는 게임판을 발견하는 손그림.
그림 1‘놀이가 죽음 이후의 여정까지 동행했다’는 인상을 주되, 단정 대신 해석의 층을 남긴다.

주사위, 신의 언어 — 우연을 신성하게 다루기

인간은 오랫동안 무작위를 무의미한 우연이 아니라 초자연의 전언(傳言)으로 읽었다.

주사위의 조상은 양과 염소의 복사뼈, 곧 아스트라갈로스(astragali)다. 근동과 지중해 세계 전역의 유적에서 무더기로 발견되는 이 뼈들은 인류가 우연을 다루는 방식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같은 뼈가 도박대에서도 굴려졌고, 신탁소에서도 굴려졌다. 이스라엘 마레샤 등지에서는 수백 점의 아스트라갈리가 나왔는데, 승리의 여신 니케나 아프로디테, 헤르메스의 이름이 새겨진 것들이 있었다. 파포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는 참배객이 뼈를 던지고, 나온 조합을 예언표와 대조해 신의 뜻을 읽었다. 로마인은 같은 주사위로 돈을 걸고 미래를 물었다.

바로 여기에 게임의 오래된 비밀이 있다. 우연은 통제 불가능하기에 오히려 신성했다. 주사위를 던지는 손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나 아닌 무엇'의 목소리로 들렸다. 도박과 점술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놀이는 그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우연의 반대편에는 순수한 질서의 게임이 있었다. 중국의 바둑(위기, 圍棋)은 공자의 『논어』에 이미 언급될 만큼 오래되었고, 거문고·글씨·그림과 더불어 선비의 사예(四藝)에 들었다. 한대의 학자 반고는 바둑판의 네모짐을 땅에, 선을 덕에, 교차점을 음양과 별자리의 운행에 견주었다. 바둑에는 주사위가 없다. 우연을 신에게 맡기는 대신, 인간이 우주의 질서를 손으로 두어 재현하려 한 게임이다. 우연을 경외한 서쪽과 질서를 사유한 동쪽 — 게임판은 문명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까지 갈라 보여 준다.

한쪽의 뼈 주사위와 신탁, 다른 쪽의 바둑돌과 질서를 비교하는 dkdk.
그림 2문명이 우연과 질서를 다루는 두 가지 태도를 한 화면에서 비교한다.

판 위의 계급 — 체스는 사회의 지도였다

체스만큼 판이 곧 사회의 축소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임도 드물다. 그 조상은 6세기경 인도의 차투랑가(chaturanga)로, '네 부분'이라는 이름처럼 보병·기병·전차·코끼리라는 당대 군대의 편제를 그대로 말로 옮긴 것이었다. 게임판은 처음부터 전장(戰場)의 모형이었다.

이 게임이 페르시아로 건너가 샤트란지(shatranj)가 되고,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들어오는 동안 말들의 이름과 힘은 각 사회의 위계를 따라 변형됐다. 특히 오늘의 '퀸'이 걸어온 길이 상징적이다. 인도·페르시아에서 이 말은 왕 곁의 '재상(mantri, firzan)'으로, 대각선으로 한 칸밖에 못 가는 약한 조각이었다. 조언으로 움직이는 신하의 자리였다. 그러던 것이 유럽에서 왕비가 되고, 15세기에 이르러 판 위에서 가장 멀리,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는 최강의 말로 다시 태어난다.

이 변신을 이사벨 여왕 같은 실제 권력자 왕비들의 부상과 연결짓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메릴린 얄롬 등), 이는 매력적인 독법이되 입증된 인과는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있다. 재상이 왕비로, 약졸이 최강으로 바뀌는 데는 인간 사회의 권력 구도가 판 위에 투영됐다는 사실이다. 왕을 지키느라 온 말이 움직이고, 잡힌 말은 판 밖으로 제거된다 — 승자가 패자를 소거하는 이 문법 자체가 오래된 세계의 질서였다.

체스의 재상 말이 사회 변화에 따라 강력한 왕비 말로 변형되는 손그림.
그림 3게임의 규칙과 말이 고정된 전통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를 흡수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가르치려던 게임이 정반대로 팔린 자리 — 모노폴리의 배신

가장 유명한 보드게임의 기원은, 가장 크게 뒤틀린 거울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인 모노폴리는 흔히 대공황기의 실업자 찰스 대로가 발명했다는 미담으로 포장되어 왔다.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1904년, 미국의 발명가이자 조지주의자였던 엘리자베스(리지) 매기는 '지주의 게임(The Landlord's Game)'의 특허를 낸다.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사상을 따라, 토지를 독점한 지주가 어떻게 부를 빨아들이고 세입자를 빈곤에 빠뜨리는지를 판 위에서 체감시키려는 교육용 게임이었다. 매기는 두 벌의 규칙을 함께 설계했다. 하나는 모두가 부를 나누는 '번영' 규칙,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이 나머지를 파산시키고 독점하는 '독점가' 규칙. 전자가 옳고 후자가 그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다.

이 게임은 특허 이후 수십 년간 지식인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일종의 민속 게임처럼 변형·확산됐다. 대로는 그렇게 익힌 판본을 다듬어 1935년 파커 브라더스에 팔았고, 회사는 뒤늦게 매기의 특허를 단돈 500달러에, 로열티 없이 사들여 뒤탈을 막았다. 그리고 '독점가' 규칙만 남겨 상품화했다. 즉 세계는 지금까지, 독점을 경고하려던 게임을 독점을 즐기는 오락으로 사 왔다. 매기가 담은 두 개의 결말 중 그가 틀렸다고 말한 쪽만 팔린 셈이다.

이 진실은 1970년대에야 법정에서 드러났다. 경제학 교수 랠프 안스파크가 '반(反)모노폴리'라는 게임을 냈다가 파커 브라더스에 상표 소송을 당했고, 방어를 준비하던 그가 매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짜 계보를 파헤친 것이다. 회사는 50만 달러의 합의금까지 제시했지만 그는 버텼고, 소송은 1983년 대법원까지 갔다. 게임판은 때로 문명을 비추지 않고 문명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춘다. 모노폴리는 그 왜곡의 기념비다.

번영 규칙은 버리고 독점 규칙만 상품으로 대량 인쇄하는 기계를 dkdk가 바라보는 모습.
그림 4비판을 위해 만든 장치가 비판 대상의 성공 신화로 뒤집힌 역설을 압축한다.

우리는 왜 다시 판 앞에 모이는가

20세기 후반, 게임판의 문법 자체를 바꾼 것은 독일이었다. 치과 기공사이던 클라우스 토이버가 1995년에 내놓은 '카탄의 개척자'는 이른바 유로게임의 상징이 됐다. 여기서는 아무도 판 밖으로 제거되지 않는다. 자원을 교환하고, 길을 놓고, 마지막까지 모두가 참여한 채로 승부가 난다. 승자가 패자를 소거하던 체스·모노폴리의 오랜 문법 대신, 상호작용과 협상과 건설이 중심에 놓였다. 카탄은 40개 언어로 4,000만 부 이상 팔리며 '보드게임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

그 르네상스는 이제 산업이다. 세계 테이블탑 게임 시장은 수백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고, 크라우드펀딩은 창작의 회로를 바꿔 놓았다. 2024년 킥스타터에서만 게임 부문에 3억 1,600만 달러가 몰렸고, 이는 플랫폼 15년 역사상 최대치였다. 5,000년 전 무덤에 묻히던 물건이, 이제 얼굴도 모르는 수천 명이 화면 앞에서 미리 돈을 걸어 함께 태어나게 하는 물건이 되었다. 후원이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인간은 왜 5,000년째 이 축소된 세계 앞에 모이는가.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1938년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가 일상과 구별되는 별도의 시간과 공간, "일상 속에 마련된 일시적인 세계"에서 벌어진다고 보았다. 흔히 '매직 서클(마술 원)'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사실 하위징아의 한 구절을 살렌과 짐머만이 2003년 『룰스 오브 플레이』에서 정식 개념으로 벼려낸 것에 가깝다 — 개념 전체를 하위징아에게 돌리는 것 자체가 흔한 오해다.

이름이 누구의 것이든, 그 통찰은 정확하다. 우리가 판 앞에 앉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만 통하는 규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종잇조각이 재산이 되고, 나무 말이 목숨을 걸며, 주사위 한 번이 운명이 된다. 바깥세상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이 원 안에서는 규칙이 분명하고 운과 실력의 몫이 투명하며 결말이 반드시 온다. 죽음을 통과하려던 세네트도, 신의 뜻을 물으려던 주사위도, 지주의 탐욕을 가르치려던 매기의 판도 결국 같은 것을 제공했다. 혼돈한 세계를, 규칙을 알 수 있는 세계로 잠시 축소해 주는 일.

그래서 게임판은 언제나 그 시대의 거울이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신성하게 여기며, 권력과 돈을 어떻게 상상하는지가 스무 칸의 판과 예순네 칸의 판에 접혀 있었다. 다음에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말을 놓거든,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우리가 두는 이 게임은, 5,000년 뒤의 누군가에게 우리 문명의 무엇을 비춰 보이게 될 것인가.

혼돈 속에 규칙의 원을 그려 시작과 결말이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드는 dkdk.
그림 5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보드게임의 매력을 하나의 공간 은유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