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문명사
카페인이 인류를 깨웠고, 그 깨어 있음이 계몽의 살롱과 제국의 폭력을 함께 길렀다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보험시장과 증권거래소와 과학 학회가 자라났다. 흔히 "취한 유럽이 각성 음료로 깨어나 계몽을 이뤘다"고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걷어내야 할 전제가 숨어 있다. 커피가 바꾼 것은 사람들의 혈중 각성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의 성격이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맑은 정신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곳은, 어쩌면 한 잔의 커피 앞이었다.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커피 한 잔 값 1페니만 내면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가 신문을 읽고 토론에 낄 수 있어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 불렸다. 술집이 몸을 풀어놓는 곳이었다면, 커피하우스는 정신을 곧추세우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각성의 공간에서 근대의 많은 것이 자라났다. 다만 그 이야기에는 우리가 흔히 놓치는 반전이 하나 있다.
페니 대학에서 자라난 것들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정보의 허브였다. 상품 시세와 선박 소식과 뉴스가 이곳에서 오갔고, 계급이 뒤섞여 맨정신으로 논쟁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기관 몇 개가 이 탁자에서 태어났다.
에드워드 로이드가 1680년대 항구 근처에 연 커피하우스에는 선주와 선원과 상인이 모여 배와 화물과 해상 손실 정보를 나눴고, 그것이 세계 최대 보험시장 '로이즈(Lloyd's of London)'의 기원이 되었다. 런던 증권거래소는 조너선스 커피하우스에서 브로커들이 시세표를 붙이던 관행에서 자라났다 — 왕립거래소에서 소란을 피운다고 쫓겨난 딜러들이 커피하우스로 옮겨 앉은 것이다. 뉴턴과 핼리가 드나든 그리션 커피하우스는 왕립학회 회원들의 단골 회합 장소였다. 어느 것도 처음부터 '거래소'나 '학회'로 세워지지 않았다. 커피 냄새 나는 탁자에서 자라났을 뿐이다.

술 취한 세계가 깨어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함정
여기서 흔히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물이 더러워 늘 맥주와 와인에 취해 있던 유럽인들이, 커피와 차라는 각성 음료를 만나 비로소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 계몽을 이뤘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서사다. 하지만 그 전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역사학자들은 "중세 유럽인이 물이 위험해 술만 마셨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깨끗한 물은 흔했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물을 마셨다. 너무 평범한 일이라 기록에 남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에일의 도수도 1퍼센트 안팎으로 낮아, 술이라기보다 곡물의 값싼 열량원에 가까웠다. 애초에 유럽이 "상시 취해 있었다"는 전제가 과장인 셈이다.
커피가 바꾼 것은 사람들의 혈중 각성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의 성격이었다.
더 근본적인 점이 있다. 공론장 이론을 세운 위르겐 하버마스조차, 커피의 화학 성분이나 각성 효과가 공론장 형성에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커피하우스가 계몽을 도운 것은 카페인이라는 물질 때문이 아니라, 신분을 섞어 맨정신으로 토론하게 한 그 공간과 사회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커피가 계몽을 "낳은" 것이 아니라, 커피하우스가 계몽적 토론을 "배양"한 것이다.
권력은 음료가 아니라 공간을 두려워했다
이 구분은 커피 금지의 역사에서 선명해진다. 1511년 메카의 총독은 커피하우스를 금지했는데, 자신을 풍자하는 시가 그곳에서 나돌았기 때문이다. 1633년경 오스만의 무라드 4세는 이스탄불에서 커피를 금하며 위반자를 처형하기까지 했다. 1675년 영국의 찰스 2세도 선동을 우려해 커피하우스 억압 포고령을 냈다 — 그러나 이 포고는 발효 이틀 전에 철회됐다. 커피를 즐기던 각료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세 사건이 겨눈 것은 음료가 아니었다. 사람이 모여 정치를 논하는 '공간'이었다. 각성 음료와 정치의 연결은 화학이 아니라 사회학의 문제였다.

카페인은 에너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카페인은 몸속에서 무엇을 할까. 흥미롭게도, 에너지를 주는 게 아니다. 깨어 있는 동안 뇌에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 쌓이는데, 이것이 수용체에 들러붙어 "피곤하다, 이제 쉬어라"는 신호를 보낸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생김새가 비슷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는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는다. 즉 카페인은 활력을 더하는 게 아니라 피로 신호를 가린다.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게 막아 뇌가 계속 달리게 하는 것이다. 삼킨 카페인의 99퍼센트가 45분 안에 혈류에 닿고, 몸에서 절반이 빠지는 데 대개 서너 시간이 걸린다.
『인간 희극』을 쓴 발자크는 커피에 관한 유명한 글을 남겼다. 커피가 위에 닿으면 "생각들이 대육군의 전투대형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그가 하루 오십 잔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글에는 그런 숫자가 없다. 후대에 붙은 과장이다. 다만 그 은유만은 각성의 감각을 정확히 붙잡았다.

차 한 잔 뒤의 제국
각성의 문명사에는 밝은 면만 있지 않다. 영국이 차에 빠져들수록 청나라와의 무역 적자가 불어났다. 청은 오직 은으로만 결제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동인도회사가 찾아낸 해법은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몰래 팔아 은을 회수하는 것이었고, 그 끝에 두 차례의 아편전쟁이 있었다. 영국인이 차를 달게 마시는 습관은 카리브의 사탕수수 농장을 키웠고, 그 농장은 대서양 노예무역과 맞물렸다. 1704년에 4파운드였던 영국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1901년 90파운드로 스물두 배가 됐다. 각성과 단맛의 뒷면에는 다른 대륙의 피가 있었다. 1773년 보스턴 항에 던져진 차 상자들이 미국 독립의 도화선이 된 것도, 결국 이 한 잔을 둘러싼 세금과 권력의 문제였다.

카페인은 인류를 조금 더 깨어 있게 만들었고, 그 깨어 있음이 계몽의 살롱과 제국의 폭력을 동시에 길러냈다. 오늘 아침의 커피 한 잔은, 그 긴 각성의 역사 맨 끝에 놓인 아주 작은 한 모금이다. 마시는 김에, 이 각성이 무엇을 깨우고 무엇을 흐리게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