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하늘을 읽는 법
밤하늘은 역사의 대부분에서 인류의 시계이자 지도이자 달력이었다
GPS가 없던 시절, 인류는 만 리 밖 섬을 찾아가려 하늘을 읽었다. 1976년 폴리네시아의 카누가 계기 하나 없이 별과 너울과 새만으로 사천 킬로미터의 대양을 건넜다. 이 고대 기술의 부활은, 역사의 대부분에서 밤하늘이 인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 시계이자 지도이자 달력.
GPS가 없던 시절, 인류는 만 리 밖 섬을 찾아가기 위해 하늘을 읽었다.
1976년, 폴리네시아의 항해용 카누 호쿨레아호가 하와이에서 타히티까지 사천 킬로미터가 넘는 대양을 계기 하나 없이 건넜다. 나침반도, 육분의도, 시계도 없었다. 미크로네시아 출신의 항해사 마우 피아일루그가 오직 별과 너울과 바람과 새만으로 서른네 날을 항해해 목적지에 닿았다. 이것은 잃어버린 고대 기술의 부활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역사의 대부분에서 밤하늘이 인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하늘은 우리의 시계이자 지도이자 달력이었다.
계기 없이 대양을 건너다
마우가 쓴 것은 '스타 콤파스'라 불리는 방법이었다. 도구가 아니라 머릿속의 지도다. 그는 수평선을 서른두 개의 '집'으로 나누고, 어떤 별이 어느 집에서 뜨고 지는지를 통째로 외웠다. 밤새 별들이 순서대로 같은 지점에서 떠오르니, 별 하나가 지평선에 걸리는 위치를 보면 뱃머리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별이 구름에 가리면 너울의 방향으로 침로를 지켰고, 낮에는 해와 바람을 읽었다. 육지가 가까워졌음은 새가 알려 줬다. 흰제비갈매기는 둥지가 있는 섬에서 수십 마일 안쪽까지만 나와 먹이를 잡고 저녁이면 돌아가므로, 해 질 녘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 떼는 그쪽에 섬이 있다는 신호였다. 섬은 너울을 반사하고 굴절시켜, 눈에 보이기 한참 전부터 파도의 무늬로 자기 존재를 알렸다. 하늘과 바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계기판이었던 셈이다.

하늘이라는 달력
밤하늘은 방향만이 아니라 시간도 알려 줬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라는 별을 보고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했다. 수 주간 보이지 않던 이 별이 동틀 녘 동쪽 지평선에 다시 나타나는 순간이, 해마다 나일강이 넘치는 시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별의 귀환이 곧 새해의 시작이었다. 문명의 생사가 걸린 농사의 달력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읽었다.
좀생이별이라 불리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세계 곳곳에서 계절의 표지였다. 그리스에서는 이 별무리가 새벽에 떠오르면 추수의 때였고, 남아프리카의 코사족에게는 파종의 별이었으며, 안데스의 잉카에게는 씨 뿌릴 시기의 신호였다. 흥미롭게도 같은 별무리가 문화마다 다른 계절을 가리켰다 — 별은 보편의 달력이 아니라, 저마다의 땅에 맞춰 읽어낸 지역의 시계였다.

하늘이라는 지도, 그리고 경도의 저주
방향과 시간 다음은 위치였다. 북반구에서 북극성이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높이는 내가 서 있는 위도와 거의 같다. 그래서 이 별의 고도만 재면 내가 얼마나 북쪽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위도는 하늘이 비교적 쉽게 내주는 정보였다.
문제는 경도였다. 내가 동서로 어디쯤 있는지는 별만으로 알 수 없었고, 이 무지가 수많은 배를 삼켰다. 1707년에는 영국 함대가 위치를 잘못 짚어 좌초해 천 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결국 영국 의회는 1714년, 경도를 알아내는 실용적 방법에 거액의 상금을 걸었다.
답은 하늘이 아니라 시계에 있었다.
원리는 이랬다. 출항지의 시각을 정확히 유지하는 시계를 배에 싣고, 현지의 정오와 비교하면 그 시차가 곧 경도가 된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정확히 가는 시계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문제를 푼 사람은 요크셔의 목수 출신 시계공 존 해리슨이었다. 그는 수십 년을 바쳐 해상시계를 완성했고, 마침내 인류는 별에 더해 정밀한 시간으로 바다 위 자기 위치를 짚을 수 있게 됐다.


붙박이가 아닌 북극성
하늘을 이야기할 때 흔한 오해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첫째, 북극성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 아니다. 실제 밝기로는 오십 위 안팎에 불과하다. 북극성의 가치는 밝기가 아니라 위치에 있다 — 천구의 북극 바로 곁에 거의 멈춘 듯 떠 있어 방향의 기준이 되어 줄 뿐이다.
둘째, 북극성은 영원한 붙박이도 아니다. 지구의 자전축은 약 이만 육천 년을 주기로 팽이처럼 천천히 흔들리는데, 이 때문에 '북극성' 자리를 맡는 별이 바뀐다. 오천 년 전 이집트인에게는 용자리의 투반이 북극성이었고, 만 이천 년쯤 뒤에는 직녀성 베가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 게다가 남반구에는 지금 마땅한 극성이 아예 없어서, 남쪽 사람들은 남십자성으로 방향을 찾는다. '북극성으로 길을 찾는다'는 것조차 특정 시대, 특정 반구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가 잃어가는 하늘
별자리 역시 하늘에 실제로 그어진 선이 아니다. 같은 별무리를 그리스인은 사냥꾼 오리온으로, 마오리는 거대한 카누의 고물로 보았다. 별자리는 인간이 하늘에 투영한 이야기이자, 문자 없는 문화가 지리와 역사와 법을 노래로 새겨 둔 기억의 저장소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별에 대응하는 '노래의 길'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경로를 세대에서 세대로 전했다.
이 대목에서 점성술과 천문학의 차이도 분명해진다. 별자리 구간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는 점성술과 달리, 실제 하늘은 세차운동 때문에 이천 년 전과 어긋나 있다. 오늘날 태양은 점성술이 말하는 별자리와 대체로 한 자리씩 밀린 곳을 지나며, 심지어 열두 궁에 없는 뱀주인자리까지 통과한다. 우리가 아는 여든여덟 개의 별자리 경계도 자연의 선이 아니라, 1922년 천문학자들이 그리스 전통을 바탕으로 합의해 그은 인공의 구획일 뿐이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그 위에 무엇을 그리기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오래된 텍스트를 읽을 수 없게 되어 간다. 빛공해 탓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 이상이 은하수를 볼 수 없고, 북미에서는 그 비율이 팔십 퍼센트에 이른다. 도시의 밤은 너무 밝아, 수천 년간 인류의 시계이자 지도이자 달력이던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손안의 기계가 방향과 시간을 알려 주는 시대에 산다. 더 이상 별을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다음에 도시를 벗어나 진짜 어두운 밤하늘을 만나거든, 잠깐 올려다봐도 좋겠다. 우리 조상들이 저 별들만으로 대양을 건너고 계절을 읽고 자기 위치를 짚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그 하늘은 여전히 거기 있다. 우리가 읽는 법을 잊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