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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경제사]2026-09-0610분 읽기

소유는 발명된 것이다

재산권의 역사

무언가를 '내 것'이라 부르는 일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제도가 만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고실험이었고, 정작 그 자신이 30년 뒤 빠뜨린 형용사 하나를 인정했다. 로크의 노동에서 인클로저와 마보 판결을 거쳐, 아무리 퍼가도 줄지 않는 아이디어까지. 소유의 경계는 시대마다 다시 그어졌다.

1224년, 알프스 산중의 한 마을이 문서로 선을 그었다. 스위스 발레주의 퇴르벨.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에서 마을 사람들은 여름 목초지와 숲을 누가 어떻게 쓸지를 정해두었다. 훗날의 규약은 더 구체적이다. 겨울 동안 제 건초로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만 소를 산으로 올려보낼 것. 놀라운 건 그 문장이 아니라 그다음이다. 그 목초지는 아직 거기 있다.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개인에게 팔리지도, 국가에 넘어가지도 않은 채로.

우리가 배운 이야기대로라면 이런 곳은 진작 망했어야 한다. 목초지를 여럿이 나눠 쓰면 각자 한 마리씩 더 올리려 들고, 결국 풀이 사라지고 모두가 굶는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이름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런데 퇴르벨은 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틀린 건 퇴르벨일까, 이야기일까.

소가 한 마리도 없던 목초지

이야기의 출처는 분명하다. 1968년 12월 13일,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사이언스』에 실은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런데 이 글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덜 알려져 있다. 하딘 자신이 30년 뒤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것은 애초에 학회의 퇴임 회장 연설문이었다. 인구 과잉을 경고하려던 원고였고, 여섯 번을 고쳐도 결론이 잡히지 않다가 1833년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의 옥스퍼드 강의에서 목초지 비유를 빌려와 겨우 모양을 갖췄다.

비유의 논리는 간명하고,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소를 한 마리 더 올리면 이득은 오롯이 내 것이고 풀이 줄어드는 손해는 모두가 나눠 진다. 그러니 누구나 한 마리를 더 올린다. 각자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다 함께 망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깔끔하게 잔인한 산수다.

dkdk가 칠판에 목초지를 그려 놓고 계산식을 채워 넣는데 정작 그림 속 목초지에는 소가 한 마리도 없다
그림 1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다 함께 망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깔끔하게 잔인한 산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하딘의 목초지에는 실제 소가 한 마리도 없었다. 조사한 어장도, 답사한 산림도, 세어본 숫자도 없다. 그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고실험이었다. 그런데 이 우화는 반세기 동안 정책의 근거처럼 인용됐고, 결론은 대체로 하나였다. 공유지는 사유화하거나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목축 지대에서는 이 도식이 정책으로 옮겨졌다. 케냐에서 공동 방목지를 집단 목장으로 재편한 조치가 그런 예다. 사유화로 가는 첫 단추였다.

하딘이 뒤늦게 끼워 넣은 형용사 하나

정작 하딘 본인은 1998년 『사이언스』에 다시 글을 실어 이렇게 적었다.

비판 문헌들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내 글에서 가장 무거운 실수는 '관리되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빠뜨린 것이었다.

한 단어의 차이지만 그 무게는 논문 한 편만큼 크다. 그가 묘사한 것은 아무도 규칙을 세우지 않고 아무나 들어와 퍼가는 상태, 즉 개방 접근(open access)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공유지(commons)라고 불렀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dkdk가 긴 문장 띠 사이에 작은 낱말 카드 한 장을 끼워 넣자 문장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림 2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1985년 수전 제인 벅 콕스는 하딘이 상상한 중세 잉글랜드의 공유지가 실제로는 전혀 개방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였다. 공유지에도 법적 소유자가 있었고, 이용할 권리는 상속이나 허가로 얻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심지어 그들조차 아무렇게나 쓰지 못했다. 가축의 종류와 마릿수에 상한이 있었고, 그 상한은 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어림한 것이었다. 공유지는 무주공산이 아니라 촘촘한 규칙의 그물이었다.

세어본 사람

우화 대신 세어본 사람이 엘리너 오스트롬이었다.

시작은 물이었다. 1965년 UCLA 박사논문에서 그가 들여다본 것은 로스앤젤레스 서부의 지하수 분지였다. 도시가 급팽창하면서 저마다 우물을 깊이 박았고, 수위가 내려가자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가질 수 있는 만큼 가져가고 지킬 수 있는 만큼 지킨다는 강도 귀족의 신조가 지하수 이용자들의 규칙이 되어 있었다. 하딘의 목초지 그대로였다. 그런데 결말이 달랐다. 물을 쓰던 사업자와 지자체들이 협회를 만들어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고, 각자 얼마나 퍼올릴지를 정하고, 그 약속을 강제할 방법까지 만들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온 것도, 분지가 쪼개져 팔린 것도 아니었다.

그 뒤 20여 년, 오스트롬은 같은 질문을 세계로 가져갔다. 1990년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서 그는 스위스 알프스 목초지, 일본 마을의 이리아이 산림, 스페인 발렌시아 일대의 관개 조합, 메인주의 바닷가재 어장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발렌시아의 물 분배 조직은 늦어도 15세기 문서에서 확인되고, 일본의 입회 관행 역시 수백 년을 견뎠다.

거기서 되풀이되는 것은 몇 가지 조건이었다. 누가 이 자원의 구성원인지 경계가 분명할 것. 규칙을 멀리 앉은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 것. 감시가 있을 것. 어겼을 때 곧장 파문하는 대신 처음엔 가볍게, 반복되면 무겁게 벌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외부 권력이 인정해줄 것.

2009년 오스트롬은 올리버 윌리엄슨과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수상 사유는 "경제 거버넌스, 특히 공유자원에 대한 분석"이었다. 요지는 공유가 언제나 옳다는 게 아니다. 오스트롬은 오히려 만병통치약을 경계하라는 쪽이었다. 사유화가 답인 곳도 있고 국가가 나서야 하는 곳도 있으며, 자치가 무너지는 사례도 그가 조사한 목록 안에 있었다. 그가 무너뜨린 것은 공유지가 반드시 망한다는 필연이다. 공유지의 운명은 자원의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규칙에 달려 있다. 비극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다.

dkdk가 우화 그림책을 덮어 옆으로 밀고, 대신 현장 노트에 실제 사례를 하나씩 세어 적는다
그림 3비극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다

손을 섞으면 내 것이 된다는 말

그렇다면 애초에 '내 것'은 어떻게 생겨났나. 근대의 표준 답안은 존 로크가 썼다. 『통치론』에서 그는 자연이 놓아둔 것에 사람이 자기 노동을 섞으면 그것이 그의 재산이 된다고 했다. 도토리를 줍는 손, 밭을 가는 손. 다만 조건이 붙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그리고 똑같이 좋은 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

우아한 논리다. 그리고 이 논리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로크는 사람들이 화폐를 쓰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순간, 썩지 않는 금과 은에 잉여를 쟁여둘 수 있게 되었으므로 불평등한 소유에도 동의한 셈이라고 봤다. 누구도 서명한 적 없는 동의서가 그렇게 발급된다.

dkdk가 땅에 손을 한 번 담갔다 빼자 옆에 놓인 기계에서 서명란이 빈 동의서가 인쇄돼 나온다
그림 4누구도 서명한 적 없는 동의서가 그렇게 발급된다

문제는 이 논리가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다. 로크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물었다.

개간도 경작도 없이 자연 그대로 방치된 아메리카의 거친 숲과 황무지에서, 1천 에이커가 그 궁핍한 주민들에게 데번셔의 잘 경작된 10에이커만큼의 편의를 주는지 묻고 싶다.

경작하지 않은 땅은 비어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은 논증인 동시에 면허장이었다. 잉글랜드 안에서는 인클로저의 명분이 됐다. 1750년부터 1850년 사이에만 4천 건 안팎의 인클로저 법이 의회를 통과했다는 것이 흔히 인용되는 수치인데, 기간을 1604년부터 1914년까지 넓게 잡으면 5천2백 건을 넘는다는 집계도 있다. 잉글랜드 전체 면적의 어느 정도가 이렇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는지도 자료마다 5분의 1에서 6분의 1 사이로 엇갈린다. 숫자는 세는 창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흔들리지만,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울타리가 서기 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유지는 권리의 목록이었다. 소 두어 마리를 먹일 권리, 땔감을 주울 권리, 추수가 끝난 밭에서 이삭을 주울 권리. 그 어느 것도 땅문서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없으면 겨울을 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울타리가 서자 그 목록은 통째로 사라졌다. 소유권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겹쳐 있던 권리들이 하나로 정리되고 나머지가 지워진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땅에 기대 살던 사람들은 도시로 갔다.

1992년, 다시 그어진 선

바다 건너에서는 같은 논리가 더 크게 작동했다. 땅에 선을 긋고 등기를 하는 관념 자체가 없던 사회는, 그 관념을 가진 쪽의 눈에 주인이 없는 땅으로 보였다. 관계로 유지되던 것이 문서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됐다.

이 문제가 법정에서 뒤집힌 것은 놀랍게도 우리 생애 안의 일이다. 10년에 걸친 소송이었고, 소송을 이끈 머리 제도 출신의 에디 코이키 마보는 판결을 보지 못한 채 그해 초에 세상을 떠났다. 1992년 6월 3일,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은 머리 제도 주민들이 제기한 마보 사건에서 6대1로, 오스트레일리아 관습법이 원주민의 토지 권원(native title)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그것은 왕실의 근원적 권원 위에 얹힌 부담으로 존재하며, 국가가 새로 부여해서가 아니라 전통적 관습에 따른 점유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 이듬해 원주민토지권법이 제정됐다. 200년 넘게 당연한 전제였던 선이 한 번의 판결로 다시 그어진 것이다.

켜도 줄지 않는 불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한 재산이 남는다. 아이디어다. 1813년 토머스 제퍼슨은 특허를 문의한 사람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에게서 생각을 받아 간 사람은 내 것을 덜어내지 않고 배움을 얻는다. 내 심지에서 제 심지에 불을 붙인 사람이 내 쪽을 어둡게 하지 않는 것처럼. 목초지는 소가 늘면 풀이 준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아무리 퍼가도 줄지 않는다. 로크의 논리도, 하딘의 비극도 여기서는 발을 헛디딘다.

제퍼슨의 결론은 분명했다. 아이디어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사회가 발명을 장려하려고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이 정해준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정하는 정책이라는 뜻이다.

dkdk가 촛불 하나에서 여러 촛불로 불을 옮겨 붙이는데 원래 불은 조금도 줄지 않고, 그 둘레에 울타리를 세우고 있다
그림 5자연이 정해준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정하는 정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식재산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됐다.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1710년 영국의 앤 여왕법은 제목부터 "학문의 장려를 위한 법"이었고, 저자에게 준 기간은 14년, 살아 있으면 14년 더였다. 영원한 소유가 아니라 기한부 인센티브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저작권 기한은 그때의 몇 배로 늘어나 있다.

소유는 사물의 성질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약속이고, 약속이므로 다시 쓸 수 있다. 퇴르벨의 목초지, 인클로저의 울타리, 마보 판결의 문장, 앤 여왕법의 14년은 모두 누군가 어느 시점에 그어놓은 선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선들 중에, 800년 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길 것은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