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효과 — 오보 위에 세워진 교과서, 그리고 진짜 현상
오보 위에 세워진 교과서, 그리고 진짜 현상
1964년 뉴욕타임스 1면의 "38명"은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숫자가 되었지만, 신문 스스로가 나중에 그 숫자를 크게 과장했다고 정정했다. 그런데 이 오보에서 출발한 연구는 실재하는 현상을 찾아냈고, 메타분석으로 재현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실제 공공장소 CCTV 219건을 분석한 연구는 열 건 중 아홉 건에서 누군가 개입했으며 방관자가 많을수록 개입 확률이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하나의 사례가 과학이 되고 신화가 되고 다시 검증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
1964년 3월 27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는 숫자가 하나 실렸다. 제목에는 37, 본문 첫 문장에는 38. "30분이 넘도록 38명의 점잖고 법을 지키는 시민들이 퀸스에서 한 살인자가 여자를 쫓고 찌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두 주 뒤였고, 기사는 경찰 고위 간부의 귀띔에서 출발했다. 그 숫자는 곧 도시의 냉담함을 재는 눈금이 되었고, 강의실로 들어갔고, 반세기 동안 심리학 교과서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숫자는 틀렸다.
두 주 뒤에 쓰인 기사
피해자는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 스물여덟 살이었고 퀸스 큐가든스에 살았다. 이 글은 그의 죽음에 관한 글이 아니라, 그 죽음이 어떻게 기사가 되고 과학이 되었는지에 관한 글이다. 사건 자체는 짧게만 적는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귀가하던 그가 살해됐다. 타임스는 처음 이 사건을 네 문단짜리 단신으로 다뤘다. 그해 뉴욕에서 일어난 636건의 살인 중 하나였다.
문제는 두 주 뒤의 1면이다. 편집국의 관심을 끈 것은 살인이 아니라 숫자였다. 2007년 레이철 매닝, 마크 러바인, 앨런 콜린스는 재판 기록과 아카이브 자료를 뒤져 한 편의 논문을 썼다. 제목이 이미 결론이었다. "38명의 목격자라는 우화." 이들의 결론은 세 겹이다. 목격자가 38명이었다는 증거가 없고, 목격자들이 살인을 지켜봤다는 증거가 없고, 목격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다.
숫자는 처음부터 흔들렸다. 제목은 37이라 했고 첫 문장은 38이라 했다. 둘의 차이를 설명한 문장은 기사 안에 없다. 60년 뒤 심리학 강의에서 인용되는 쪽은 언제나 더 큰 쪽이다.

신문이 스스로 정정한 날
가장 인용할 만한 반박은 학계가 아니라 타임스 자신에게서 나왔다. 2016년 살인범의 부고에서 신문은 자기 기사를 이렇게 되짚었다.
38명의 목격자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묘사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 기사는 목격자의 수와 그들이 인지한 바를 크게 과장했다. 아무도 사건 전체를 보지 못했다. 몇 사람만이 일부를 얼핏 봤거나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알아들었다. 많은 이는 연인이나 취객의 다툼 소리로 여겼다. 공격은 세 차례가 아니라 두 차례였다. 그리고 그 뒤에 두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다.
같은 해 10월 12일, 타임스는 1964년 원기사의 온라인판 아래에 편집자 주를 붙였다. 이후의 취재가 이 기사의 중요한 요소들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정정에도 남는 불확실성이 있다. 신고자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 무엇을 신고했는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부고는 두 명이 신고했다고 적었고, 매닝 등은 애초에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진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확실한 것은 범위뿐이다. 0명은 아니었다.

기록에는 지금도 어긋나는 대목이 남아 있다. 2016년 부고는 그를 안고 구급차를 기다린 사람을 "일흔 살 여성"이라고만 적었다. 2020년 타임스가 실은 소피아 패라의 부고는 같은 장면의 주인공을 패라로 지목한다. 패라는 2020년에 아흔둘로 세상을 떠났으니 1964년에는 30대였다. 정정 이후에도 타임스의 두 기사는 그날 밤 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을 다르게 적고 있다. 확실한 것은 한 이웃이 가해자가 아직 근처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뛰어나갔고, "도움이 오고 있어요"라고 속삭였다는 사실이다. 반세기 동안 사람들이 외운 것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이야기였고, 실제로 나섰던 사람의 이름이 신문 지면에 제대로 오른 것은 그가 죽은 뒤였다.
틀린 이야기에서 시작된 진짜 발견
정작 과학은 여기서부터 제대로 시작한다. 오보를 읽고 자극받은 두 젊은 연구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1968년에 실험을 설계했다. 참가자는 인터컴으로 다른 학생과 대화하다가 상대가 발작을 일으키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믿은 참가자는 대부분 문을 열고 나갔다. 다른 청취자가 여럿 더 있다고 믿은 참가자는 절반도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해의 다른 실험에서는 방에 연기가 스며들었다. 혼자 있으면 대부분 신고했고, 태연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대부분 앉아 있었다.
두 개의 설명 기제가 여기서 나온다. 책임 분산 —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 몫의 책임은 나뉜다. 그리고 다원적 무지 — 다들 가만히 있으니 별일이 아닌 모양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오독한다. 중요한 것은 이 발견이 기사와 무관하게 성립한다는 점이다. 실험은 38이라는 숫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보는 연구의 계기였지 근거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이후 반복해서 확인됐다. 1981년 라타네와 스티브 니다의 리뷰가 있었고, 2011년 페터 피셔 등은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의 연구를 모아 메타분석했다. 참가자 7,700명 이상, 독립 효과크기 105개, 전체 효과크기 g = −0.35.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효과다. 단서는 달아야 한다. 이 수치는 1960년대 이후의 기존 연구를 고정효과 모형으로 합산한 결과이지, 여러 연구실이 사전등록으로 다시 돌려본 대규모 재현이 아니다. 근거의 성격은 "재현됐다"보다 "합산됐다"에 가깝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오보에서 출발한 질문이 헛것을 좇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교과서는 고쳤지만, 이야기는 남았다
문제는 교과서였다. 매닝과 동료들은 이 우화가 심리학 교과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실험 결과를 소개하기 전에 극적인 실화를 배치하면 학생의 기억에 박힌다. 그래서 저자들은 기사에서 검증되지 않은 세부까지 그대로 옮겼고, 다음 판은 앞 판을 베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리처드 그릭스는 2015년 『심리학 교수법』에 「입문 심리학 교과서 속 키티 제노비스 이야기: 50년 후」를 실었다. 입문 교과서 21종의 서술을 하나하나 대조한 작업이다. 결과는 몇몇 교과서가 여전히 옛 이야기를 그대로 싣고 있지만, 대부분은 더 정확하게 갱신된 서술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학계는 자기 문헌을 고쳤다. 고쳐지지 않은 것은 그 바깥이다. 반박 논문은 인용 몇백 건으로 끝나지만, 강의실에서 한 번 들은 일화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평생 간다. 교과서 한 줄이 바뀌어도 이미 그 문장으로 배운 세대의 기억은 갱신되지 않는다. 오보가 과학보다 오래 사는 방식은 인쇄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실험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2019년 여름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에 공개된 연구는 방법을 통째로 바꿨다. 리처드 필폿과 러바인 등은 영국·네덜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공장소 CCTV에 실제로 찍힌 갈등 상황 219건의 영상을 체계적으로 코딩해 분석했다. 결과는 교과서와 정면으로 어긋났다. 열 건 중 아홉 건에서 최소 한 명, 대개는 여러 명의 방관자가 무언가를 했다. 치안 체감 수준이 크게 다른 세 나라에서 개입 확률은 비슷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관자가 많을수록 누군가 개입할 확률은 오히려 높아졌다. 후속 연구는 개입한 사람이 다치는 비율도 낮다고 보고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두 연구는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실험실은 "이 사람 한 명이 나설 확률"을 재고, CCTV는 "이 자리에서 누구든 나설 확률"을 잰다. 앞의 확률이 조금 떨어져도 사람 수가 늘면 뒤의 확률은 올라간다. 피해자에게 중요한 것은 뒤쪽이다.
게다가 피셔의 메타분석 자체가 단서를 촘촘히 달아뒀다. 상황이 위험하다고 지각될수록, 가해자가 현장에 있을수록, 개입 비용이 물리적일수록 방관자 효과는 약해졌다. 다른 방관자가 실험 협조자가 아니라 진짜 사람일 때도 그랬다. 즉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억제 요인이면서 동시에 지원 요인이다. 실험실의 애매한 신호는 다원적 무지를 낳지만, 길거리의 명백한 폭력은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다. 러바인과 사이먼 크라우더가 2008년에 보인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집단이라고 느껴질 때 사람 수는 억제제가 아니라 촉진제가 된다.

짚어야 할 것은 방관자 효과가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크기가 측정됐고, 조건이 붙었고, 적용 범위가 좁아졌다. 과학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붕괴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반복하는 것
지금 이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다시 돌아간다. 조회수 수만 회의 게시물 아래에서 아무도 신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개탄, 단체 대화방에서 모두가 읽었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사이버 괴롭힘의 방관자 행동은 이미 메타분석이 나올 만큼 축적된 연구 주제이고, 온라인 환경이 책임 분산에 유리하다는 점도 사실이다. 관중의 크기가 눈앞에 숫자로 표시되니 책임이 나뉘는 감각은 오히려 또렷하다.
그러나 형태를 보라. 큰 숫자, 침묵한 다수, 도덕적 판정. 1964년 1면의 구조가 그대로다. 우리가 그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데이터 때문인지, 아니면 학습된 서사의 모양 때문인지는 따져볼 만하다.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문장은 언제나 "여러 사람이 각자 조금씩 움직였다"보다 잘 팔린다. 그리고 온라인에서는 세어보기가 더 어렵다. 조용히 신고 버튼을 누른 사람은 타임라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소피아 패라의 이름이 반세기 동안 지면에 없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로베르트 호르텐시위스와 베아트리스 더헬더는 2018년, 방관자 연구의 질문을 도움의 부재에서 도움의 성패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필폿 등의 결론도 같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왜 아무도 돕지 않는가가 아니라, 누군가 나섰을 때 그 개입이 왜 성공하거나 실패하는가다.
38이라는 숫자는 60년 동안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의 판정을 내려줬다. 그 판정의 근거가 무너진 지금,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 숫자를 왜 그렇게 오래 믿고 싶어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