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 미생물이라는 보이지 않는 일꾼
인류가 수천 년간 얼굴도 모르고 고용해 온 생명에 관하여
빵·맥주·와인·치즈·김치·간장은 모두 하나의 원리를 공유한다. 발효는 요리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게 노동을 맡겨 보존과 영양과 문명을 얻어 낸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계약이다. 그 일꾼의 정체는 파스퇴르에 와서야 밝혀졌다.
포도를 으깨 통에 넣고 뚜껑을 덮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수천 년을 살았다.
며칠이 지나면 즙이 부글거리고, 열이 오르고, 달던 것이 취기를 뿜었다. 밀가루 반죽은 밤새 부풀어 두 배가 되었고, 우유는 굳어 덩어리가 되었으며, 배추는 시큼해지면서 겨우내 썩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변화를 신의 조화라 여기거나, 그저 재료의 성질이라 믿었다. 실은 그 통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밥값을 하고 있었다. 발효란 요리 기술이라기보다, 인간이 미생물과 맺은 계약서 없는 가장 오래된 고용 계약이다.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노동을 맡기는 대가로 인류는 보존과 영양, 취기와 문명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그 일꾼의 정체는 19세기 파스퇴르에 이르러서야 겨우 밝혀졌다.
발효와 부패는 같은 일이다
흔히 발효는 부패의 반대라고 말한다. 하나는 몸에 좋고 하나는 몸을 상하게 하니, 정반대의 현상처럼 들린다. 그러나 미생물의 입장에서 둘은 같은 일이다. 둘 다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미생물이 유기물을 더 단순한 물질로 쪼개는 과정이고, 그 결과가 사람에게 쓸모 있으면 발효, 해로우면 부패라 부를 뿐이다. 경계선은 미생물의 종류나 화학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이해관계에 그어져 있다.
같은 미생물이 상황에 따라 편을 바꾼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젖산균은 배추에서 김치를 익히고 우유에서 요구르트를 만들지만, 같은 무리가 맥주와 와인에 잘못 끼어들면 술을 시큼하게 망쳐 버린다. 파스퇴르가 1866년에 쓴 포도주 연구서의 제목이 이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술이 시어지는 현상을 아예 '포도주의 병'이라 불렀다. 같은 젖산 발효가 김칫독에서는 성공이고 술통에서는 병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발효는 원하는 미생물이 일하는 것이고 부패는 원치 않는 미생물이 일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발효식품은 전부, 인간에게 유리한 쪽으로 미생물의 세력 다툼을 몰아준 결과물이다. 그래서 발효는 방치가 아니라 관리다. 소금 농도, 온도, 산소를 조절해 원하는 균에게 유리한 판을 깔아 주고 나머지를 억누르는, 지극히 섬세한 통제의 기술이다.

빵이 먼저냐 맥주가 먼저냐
이 계약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두고 고고학은 오래 다퉈 왔다. 곡물을 다루기 시작한 인류가 그것으로 빵을 먼저 구웠는가, 술을 먼저 빚었는가. 낭만적인 쪽은 맥주다. 취기를 나누는 잔치를 벌이려고 곡물을 대량으로 모으다 보니 결국 농업이 시작됐다는 가설, 이른바 '맥주가 농업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이스라엘 라케펫 동굴의 1만 3천 년 전 돌절구에서 곡물을 삭힌 흔적이 나오면서 이 가설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요르단 슈바이카 유적에서는 약 1만 4천 4백 년 전의 탄화된 빵 부스러기가 나왔다. 현재까지의 연대만 놓고 보면 빵의 증거가 오히려 더 오래됐고, 라케펫의 잔여물이 맥주인지 그냥 삭힌 죽인지도 아직 논쟁 중이다. 그러니 '맥주가 빵보다 먼저'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순서가 아니다. 빵도 술도, 농사가 시작되기 수천 년 전 떠돌던 수렵채집민의 손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밭을 갈기도 전에 인간은 이미 미생물을 부리고 있었다. 발효는 문명의 결과물이 아니라, 어쩌면 문명을 앞당긴 방아쇠였다.

보이지 않는 일꾼이 세운 것
빵, 맥주, 와인, 치즈, 김치, 간장. 재료도 맛도 대륙도 제각각인 이것들은 하나의 원리를 공유한다. 미생물이 당이나 단백질을 분해하며 알코올, 산, 아미노산 같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 인류는 이 원리를 이론으로 이해하기 훨씬 전에, 서로 연락한 적도 없는 온 대륙에서 제각기 발견했다. 중국 자후 유적에서는 약 9천 년 전, 쌀과 꿀과 산사나무 열매를 섞어 삭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의 흔적이 나왔다. 지금의 중동 포도주보다 오백 년 이상 앞선다. 폴란드에서는 약 7천 년 전, 구멍이 촘촘히 뚫린 토기 체와 그 위에 남은 우유 지방 잔여물이 발견됐다. 우유를 굳혀 물기를 걸러 냈다는 흔적, 곧 인류가 치즈를 만들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다. 누구도 미생물을 몰랐지만, 모두가 미생물을 부리고 있었다.
이 계약으로 인간이 얻은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보존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미생물이 만들어 낸 산과 알코올은 다른 해로운 균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음식의 수명을 몇 배로 늘렸다. 우유는 며칠이면 상하지만 치즈는 몇 달을 간다. 배추는 김치가 되어 겨울을 나고, 갓 잡은 생선은 젓갈이 되어 해를 넘긴다. 둘째는 영양이다. 발효는 소화되기 어려운 덩어리를 잘게 풀어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늘리고, 곡물 속에 갇혀 있던 무기질의 흡수를 돕는다. 굶주림에 가까웠던 시대에 이는 목숨이 걸린 이득이었다. 셋째는 교역이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는 성질은 발효식품을 자연스레 상품으로 만들었다. 한 지역의 특별한 치즈, 특정한 양조법, 어느 마을의 장은 멀리까지 실려 가 값이 매겨졌고, 그 교환의 길을 따라 문화와 취향도 함께 흘렀다.
여기서도 흔한 오해 하나는 걷어낼 필요가 있다. 옛사람들이 물이 더러워 어쩔 수 없이 맥주와 와인만 마셨다는 이야기다. 낭만적이지만 근거가 약하다. 사람들은 늘 물을 마셨고, 술은 안전한 대체재라기보다 열량과 맛, 그리고 함께 나누는 자리의 즐거움이었다. 발효의 진짜 공로는 물을 대신한 데 있지 않고, 계절과 굶주림을 견디게 한 보존과 영양에 있었다.
한국의 장이 그 원리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삶은 콩을 메주로 띄우면 누룩곰팡이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재와 여러 세균이 콩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그 감칠맛이 간장과 된장으로 갈라진다. 김치는 더 놀랍다. 따로 종균을 넣지 않아도 배추와 마늘, 생강에 이미 붙어 있던 젖산균들이 알아서 들어와 발효를 이끈다. 사람은 소금과 온도라는 판을 깔아 줄 뿐, 실제 노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일꾼의 몫이다.

파스퇴르가 오기까지의 무지
이 일꾼의 정체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수수께끼였다. 흔히 파스퇴르 이전을 완전한 무지의 시대로 그리지만, 실은 격렬한 논쟁의 시대였다. 1837년 무렵 카냐르드라투르, 슈반, 퀴칭 같은 이들은 현미경으로 효모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살아 있는 생물이며 발효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화학자였던 리비히와 뵐러는 이를 비웃었다. 그들에게 발효란 죽은 물질이 저절로 무너지는 순수한 화학 반응이었지, 미물이 벌이는 일이 아니었다.
이 논쟁을 실험으로 끝낸 사람이 파스퇴르다. 그는 발효액마다 특정한 미생물이 자라고 있음을 꼼꼼히 관찰해, 발효가 죽은 물질의 자발적 붕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미생물의 작용임을 증명했다. 나아가 산소 없이도 사는 생명이 있음을 밝히며 "발효는 산소 없는 삶"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가 사서 마시는 우유의 저온살균, 곧 파스퇴리제이션도 원치 않는 미생물을 열로 죽이려던 그의 연구에서 나왔다. 수천 년간 얼굴 없던 고용주가 마침내 자기 일꾼의 이름을 안 셈이다.
그러나 정답을 낸 파스퇴르조차 절반만 옳았다. 그는 발효가 오직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만 일어나는 '생명의 표현'이라 믿었다.
1897년 에두아르트 부흐너가 이 믿음을 깼다. 그는 효모를 짓이겨 세포를 모두 죽인 즙만으로도 설탕이 알코올로 바뀐다는 것을 보였다. 일을 하는 것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세포가 만들어 낸 효소였다. 부흐너는 이 공로로 190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생명에는 신비한 힘이 깃든다는 생기론은 이로써 무너졌다. 파스퇴르가 화학자들의 오만을 꺾었다면, 부흐너는 파스퇴르의 신비주의를 꺾었다.

유산균이라는 이름의 과대광고
정체가 밝혀지자 이번엔 반대 방향의 유혹이 찾아왔다. 발효식품이라면 무엇이든 몸에 좋다는 믿음이다. 광고는 장 건강과 면역, 심지어 항암까지 약속한다.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다. 2021년 스탠퍼드 연구진은 발효식품을 많이 먹은 사람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늘고 염증 지표가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실험실의 결과와 광고 문구 사이의 거리다. 하버드의 전문가는 시판 발효식품이 제조와 유통 과정의 열과 빛에 노출되면서, 라벨에 적힌 만큼의 살아 있는 균이 정작 그릇에 도착할 즈음에는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더 근본적인 함정도 있다. 마트에서 파는 상온 보관 오이피클 상당수는 사실 발효된 것이 아니라 식초에 절인 것이어서, 애초에 살아 있는 균이 들어 있지 않다. 발효식품과 유산균 제품은 같은 말이 아니다. 효능을 따지려면 최소한 '살아 있는 균'이 든 냉장 제품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발효가 몸에 이롭다는 말은 대체로 옳지만, 그 말을 아무 병에나 붙일 수 있는 만능 부적으로 여기는 순간 광고가 과학을 앞질러 버린다.
수천 년 전 통에 포도를 담근 사람은 자기가 미생물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오늘의 우리는 그 일꾼의 이름과 유전자까지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라벨의 약속과 통 속의 진실 사이에서 헷갈린다. 아는 것이 늘어도 계약의 상대는 여전히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발효를 대하는 가장 정직한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인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꾼을 믿되,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겸손하게 지켜보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