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은 언제부터 죄가 됐나
노동이 미덕이 되기까지, 뒤집힌 위계의 2,400년
고대에 노동은 노예의 몫이었고 여가가 시민의 조건이었다. 근대는 그 사다리를 통째로 뒤집어 일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쉬는 날 오후에 느끼는 죄책감에는 만들어진 날짜가 있다.
서기 530년 무렵 몬테카시노의 한 수도사가 정오의 햇빛 아래 창밖을 내다보며 해가 왜 이리 더디 가나 원망하고 있었다면, 그는 자기가 지금 죄를 짓는 중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무기력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아케디아(acedia), 사막의 교부들이 '정오의 악마'라 불렀던 마음의 병이다.
베네딕도가 수도원 규칙서 48장 첫 문장에 못을 박은 것도 그래서다.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 뒤로 하루가 촘촘히 이어진다. 부활절부터 10월까지는 아침 기도가 끝나면 곧장 손일을 하고, 네 시쯤부터 여섯 시까지 책을 읽고, 식사와 휴식 뒤에 저녁 기도 때까지 다시 일한다. 빈 시간을 남기지 않는 것 자체가 수행이었다.
이 문장이 지금 우리 귀에는 하나도 새롭지 않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읽었다면 무슨 소리인가 했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8권에서 교육을 논하며 여가(scholē)가 일보다 바람직하고 그 자체로 목적이라고 썼다. 일은 여가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가 보기에 몸이나 정신을 덕에 쓸 수 없게 만드는 활동은 전부 저속한(banausos) 것이었고, 특히 삯을 받고 하는 일이 그랬다. 정신을 다른 데 붙들어 두고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였다.
로마도 같았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품삯이란 "노예 신분의 담보물"이며 "작업장에는 자유인다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세리와 고리대금업자는 미움을 사고, 소매상은 거짓말 없이 이문을 못 내며, 생선장수와 백정과 요리사는 감각의 쾌락에 봉사하니 그보다도 아래다.
여기서 여가는 빈둥거림이 아니라 시민의 조건이었다. 정치를 하고 철학을 하고 친구와 논쟁할 시간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봤다. 물론 그 여가는 공짜가 아니었다. 아테네와 로마의 시민이 광장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건 밭과 광산과 부엌에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는 노동을 경멸한 게 아니라, 노동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갈랐다.

정오의 악마가 나태가 되기까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4세기 말 여덟 가지 악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아케디아를 "그중 가장 성가신 것"으로 꼽았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증상을 꼼꼼히 적었다. 안절부절못하고, 한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해가 언제 지나 싶어 자꾸 하늘을 본다. 5세기 초가 되면 아케디아는 "일도 기도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수도 생활의 전문용어로 굳는다.
중요한 건 이게 처음엔 노동 태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을 향한 마음이 식어 버린 영적 슬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리로는 "영적인 선에 대한 슬픔"이었다. 그런데 라틴 서방에서 일곱 가지 대죄 목록에 흡수되면서 아케디아는 나태가 되고, 나태는 점점 '일하지 않음'으로 좁혀진다. 신을 향한 게으름이 영주와 고용주를 향한 게으름으로 번역된 셈이다. 노동을 성화한 최초의 장소가 수도원이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남는다. 담장 안에서 만들어진 규율이 언젠가 담장 밖으로 나온다.

게으른 자를 처벌하는 법
1547년 12월 24일, 잉글랜드 의회가 부랑자법을 통과시켰다. 일할 힘이 있는데 일자리 없이 떠도는 사람은 붙잡아 2년간 노예로 부릴 수 있게 한 법이다. 주인은 때리거나 사슬을 채워 일을 시킬 수 있었고 그 사람을 사고팔 수도 있었다. 부랑아로 분류된 아이들은 남자는 24세, 여자는 20세까지 강제 도제로 묶였다.
역사학자들은 이 법이 실제로 집행된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다. 그래도 조문은 남는다. 법이 상상한 처벌의 수위가 곧 그 시대가 게으름을 어디쯤에 놓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이제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 치안의 문제였다.
300년 뒤에는 도덕의 문제가 된다. 1834년 신구빈법은 교구들을 묶어 워크하우스를 짓게 했고, 도움을 받으려면 집을 떠나 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부 생활은 일부러 가혹하게 설계됐다. 가족은 흩어지고, 제복을 입고, 밧줄을 뜯거나 돌을 깼다. 정말로 절박한 사람만 문을 두드리게 하려는 장치였다. 영국 국립기록보관소는 그 동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중산층과 상류층 사이에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게으르라고 돈을 주고 있다"는 의심이 퍼져 있었다는 것.
베버의 테제, 그리고 그것이 무너진 지점
1904~1905년 막스 베버는 이 뒤집힌 위계에 이름을 붙였다. 종교개혁이 세속의 직업을 소명(Beruf)으로 바꿔 놓았고, 구원 여부를 알 길 없는 칼뱅주의자에게 현세의 성실과 성공이 선택받았다는 표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는 도덕의 언어를 쓴 회계 문장이었다. 결말은 유명하다. "청교도는 직업인이 되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강요당한다."
흔히 이 테제는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를 낳았다"로 요약돼 교과서에 실린다. 실증 연구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자샤 베커와 루트거 뵈스만은 2009년 『계간 경제학 저널』에 실은 「베버가 틀렸는가」에서 19세기 말 프로이센 군 단위 자료를 비텐베르크까지의 거리로 분석했다. 개신교 지역이 더 잘살았던 건 맞다. 다만 그 격차의 대부분을 설명한 건 금욕적 노동 윤리가 아니라 문해력이었다. 성경을 직접 읽히려던 교육이 인적자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비데 칸토니는 2015년 『유럽경제학회지』에서 1300~1900년 독일 도시 272곳의 성장을 추적하고 더 단호하게 적었다. "개신교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심할 게 있다. 무너진 것은 베버의 인과 기계장치지, 그가 그린 풍경 전체가 아니다. 노동이 소명으로 재분류됐다는 관찰은 여전히 서 있다.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만들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근대인이 제 일자리를 소명이라 부르게 된 경위를 따라가려면 이 계보를 지나야 한다.
게으름이 죄가 된 것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의 결과다. 노예에게 떠넘겼던 일을 모두의 의무로 만들려면, 일하지 않는 상태에 먼저 죄의 이름부터 붙여야 했다.

성 월요일이 사라진 자리
17세기부터 잉글랜드 수공업자들에게는 성 월요일이라는 관습이 있었다. 달력에 없는 성인의 축일이다. 토요일에 품삯을 받고 일요일에 놀고 월요일까지 쉬었다. 칼 만드는 직인과 인쇄공이 특히 그랬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런던 인쇄소 시절 자기만 월요일에 꼬박꼬박 나왔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더글러스 리드는 1976년 『과거와 현재』에 「성 월요일의 쇠퇴, 1766~1876」을 실었다. 이 관습이 사라지는 데 110년이 걸렸다는 뜻이다. 토요일 반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월요일의 무단결근은 명분을 잃었고, 습관은 제 시간표를 스스로 짜던 자영업자와 형편이 나은 직인들에게만 오래 버텼다. E. P. 톰프슨이 1967년 같은 학술지에서 정리한 대로, 일의 리듬이 할 일 중심에서 시계 중심으로 옮겨 간 결과였다.
흔한 오해 하나를 여기서 걷어내자. 기계가 사람을 고된 노동에서 건져 냈다는 이야기 말이다. 순서가 반대다. 줄리엣 쇼어가 모은 추정치로 1840년 잉글랜드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3,105~3,588시간, 주 69시간이었다. 산업화는 노동시간을 늘렸다.
다만 자주 인용되는 반대편 수치, 중세 소작농이 1년에 150일 남짓 1,620시간만 일했다는 계산도 그대로 믿을 건 못 된다. 일당 기록을 연간으로 늘려 잡은 추정이기 때문이다. 제인 험프리스와 야코브 바이스도르프는 2019년 『이코노믹 저널』에서 이런 방식이 중세의 노동소득을 과대평가하고 산업혁명기의 노동소득은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연간 고용계약 기록으로 다시 계산하면 중세 사람들은 통념보다 더 많이 일했고, 노동 강도는 기계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오르고 있었다. 근면이 산업보다 먼저 왔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실제로 꺾인 것은 20세기다. 독일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870년 3,284시간에서 2023년 1,335시간으로 내려왔다.

네 시간이면 충분하다던 사람들
1930년 케인스는 100년 뒤 진보한 나라들의 생활 수준이 지금의 네 배에서 여덟 배가 되리라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다. "하루 세 시간 근무나 주 15시간 노동이면 문제를 꽤 오래 미룰 수 있다. 하루 세 시간이면 우리 안의 옛 아담을 달래기에 충분하니까." 돈에 대한 사랑은 "다소 역겨운 병증"이라고 불렀다. 2년 뒤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더 밀어붙였다. "세상에는 일이 너무 많이 행해지고 있고, 일이 미덕이라는 믿음이 막대한 해를 끼친다." 보통의 임금노동자가 하루 네 시간만 일해도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있고 실업도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가 남긴 문장은 이 글 전체의 요약이기도 하다. "노동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다."
케인스의 생산성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빗나간 건 그 잉여로 우리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예측이었다. 필요가 채워지면 사람들이 일을 줄일 거라고 봤는데, 필요에는 절대적인 것과 남과 견주어 생기는 것이 있고 뒤쪽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 구분을 본인이 적어 놓고도 무게를 잘못 달았다. 늘어난 몫이 시간의 형태로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사정도 있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분류 11판에서 번아웃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증후군"으로 규정했다. 에너지 고갈,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과 냉소, 직무 효능감 저하. 다만 질병이 아니라 직업 관련 현상으로 분류했다. 일이 사람을 태워 없앤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걸 병이라 부르지는 않은 것이다. 2021년 미국에서는 은퇴하지 않은 성인의 19퍼센트가 자발적으로 직장을 떠났다. 30세 미만에서는 37퍼센트였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그들이 꼽은 이유는 낮은 임금 63퍼센트, 승진 기회 없음 63퍼센트,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 57퍼센트였다.
1883년 『게으를 권리』를 펴낸 폴 라파르그는 마르크스의 사위였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일할 권리가 아니라 일하지 않을 권리라는 그의 주장은 당대에 조롱거리였다. 오늘 안티워크를 내건 온라인 게시판에 모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도 대개 노동의 폐지는 아니다. 존중, 시간, 그리고 일 바깥에도 삶이 있다는 승인이다.

우리가 여전히 이력서의 공백을 해명하고, 쉬는 날 오후에 이유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면 물어볼 만하다. 그 죄책감은 어디서 왔는가. 1,500년쯤 전 정오의 햇빛 아래 창밖을 보던 수도사에게 붙은 이름 하나가, 아직 우리 안에서 근무 중이다.